"주택 거래는 여전히 위축돼 있지만 최근 생애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베키 유 사장은 17일 "고정소득이 있는 전문직을 중심으로 집을 사려는 이들이 마땅한 주택을 찾기 위한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택가격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져 지금이 주택 마련 적기라고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S&P케이스실러지수로 따지면 미국 주택가격은 2006년보다 평균 29% 떨어진 상태다.

2007년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사태 이후 급락세를 보이던 미 주택시장은 최근 안정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계상으론 여전히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시장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얘기다.

뉴저지 리지우드에서 '리얼티 나인'을 운영하는 조디 라이언은 "매도자와 매수자 간에 기싸움을 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급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사려는 사람은 매수 시점을 저울질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6월 이사철을 앞두고 주택을 사려는 이들의 문의도 크게 늘었다고 라이언은 말했다. 그러다 보니 급매물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유 사장은 45만9000달러에 나온 급매물이 47만5000달러에 팔렸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 애난데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에디 오 프라임부동산 사장도 "올 들어 급매로 내놓은 매물의 소화 속도가 지난해보다 20~30% 빨라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백인들은 다소 신중한 편이나 중국인과 중동인들은 2~3명씩 공동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매물 건당 3~4명의 매수자가 몰리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패어팩스카운티 내 기존 주택 재고는 지난해 8월 초 5686채에서 이달 초 3278채로 42%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버지니아주 던로링에 위치한 애브리 헤스 부동산의 스캇 애브리 사장도 "주택경기가 바닥에 근접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애브리 사장은 "32년 동안 부동산업을 해 왔지만 모기지 금리가 요즘처럼 연 4.5~4.75%로 떨어진 적은 없다"며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낙관했다. 오바마 정부가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세금 혜택까지 주고 있는 데다 그동안 주택가격이 많이 빠져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부동산 침체 영향이 특히 컸던 플로리다에서도 싼 가격에 콘도를 매입하려는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플로리다 부동산중개업연합회에 따르면 2월 콘도와 주택 판매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각각 71%,68% 급증했다. 마이애미 켈러 윌리엄 리얼티에 근무하는 론 플랏은 "구매자가 몰리면서 일손이 달릴 정도"라며 "상당수 물량은 급매물"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구매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현진 뉴스타 프레즌트오피스 중개인은 전화통화에서 "최근 매매가 활발한 물량 가운데 50% 정도가 은행에 압류된 주택"이라면서 "이를 사겠다는 경매 입찰자들 사이에 경쟁이 높아져 거의 주변 시세 수준으로 낙찰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압류 매물은 통상 시세보다 20~30%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택가격이 바닥을 다지고 있는 셈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모기지 금리가 떨어졌어도 조건이 까다로워져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점은 주택시장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정소득이 적거나 최근 2년 동안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사람은 대출을 받아 집 사기가 어려워졌다. 심지어 집값의 절반 이상을 현금으로 줘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실업률 증가로 압류가 증가하면 주택시장 회복이 그만큼 더뎌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뉴욕=이익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