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기는 지났다. 그러나 장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이 12일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기관장들은 "경기 바닥이 가까워졌지만 단시일 내에 본격적인 회복세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향후 경기흐름은 바닥이 길게 이어지는 L자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바닥 가까워졌지만 'L'자형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앞으로 6개월 안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는 전환점이 올 것으로 보지만 전체적으로는 L자 형태가 될 것"이라며 "긴 흐름에서 보면 침체 국면이 계속된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제조업 경기전망과 주가 등 몇 가지 선행지수를 봤을 때 바닥이 가까워진 것은 맞다"며 "그러나 치고 올라가는 힘이 강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를 생각했을 때는 바닥이 어디인지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이 올해 마이너스에서 내년 플러스로 돌아서면 지표상으로는 바닥을 치고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소비와 투자 등 경제활동의 수준은 2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그 속도에는 부문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은 "내년 상반기에는 수출 소비 투자 등이 모두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지만 수출이 먼저 살아나고 소비와 설비투자는 회복 속도가 더딜 것"이라며 "특히 고용은 가장 마지막에 늘어나 취업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지출 효과,글로벌 경기가 변수

경기 회복의 시기와 속도를 가늠하는 변수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상황과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를 꼽았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재정 집행을 통해 추가적인 경기 하락을 막은 뒤 글로벌 경기가 점차 회복세로 접어듦에 따라 수출이 살아나고 뒤이어 국내 설비투자와 고용도 확대되는 것이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회복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장은 "내수와 수출이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경기를 살리는 역할은 정부가 맡을 수밖에 없다"며 "일단 재정지출을 통해 단기 수요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김종석 원장은 "결국 미국과 중국에 달려 있다"며 "미국의 소비 부진이 계속되고 중국의 성장률이 6% 밑으로 떨어지면 한국 경제도 위험하다"고 밝혔다.

오 실장은 "현재 모든 전망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며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처럼 대형 금융회사나 대기업 중에 파산하는 곳이 생기면 다시 지난해 4분기와 같은 공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 장기화되면 구조조정 속도 내야"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경기 회복의 속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구조조정이 경기 급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 원장은 "구조조정은 어떤 순간에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며 "지금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세계 경기가 회복돼도 상승 흐름을 탈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종석 원장도 "구조조정이 잘 안 되면 그만큼 경기 회복이 늦어진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며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고 대상 산업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홍 실장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적절치 않다"며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추가적인 경기 하락을 막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오 실장도 "경기 하강 속도가 둔화되는 조짐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유승호/유창재/박신영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