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진상조사..무작위배당 약속 뒤에도 일부 지정배당
"사건처리 촉구하러 헌재소장 만났지만 덕담만 해"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한 것은 재판 진행 및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번 사건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올리도록 지시해 어떤 결론이 날지, 신 대법관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대법원 진상조사단(단장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16일 오후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합헌ㆍ위헌 구별 없이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냈고, 실제 그런 취지로 이해한 법관이 일부 있었던 점을 종합해 보면 신 대법관의 일련의 행위는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 "촛불사건 피고인의 보석사건을 맡은 최모 판사에게 휴대전화로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취지로 말한 것은 재판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촛불재판 배당과 관련해서도 "재판부 지정 기준이 모호하고 납득할 설명을 하지 못하는 점 등에 비춰 `배당 주관자의 임의성이 배제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배당 예규의 취지를 벗어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신 대법관이 촛불사건을 골고루 배당하기로 약속한 뒤에도 관련 사건 96건 중 61건은 무작위 배당됐지만 25건은 일부 재판부 사이에, 10건은 특정 재판부에 지정배당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법원장의 메시지라며 보낸 이메일 중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따라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부분은 신 대법관이 본인 생각을 가미해 작문한 것이라고 조사단은 발표했다.

평소 소신을 대법원장의 권위를 빌려 판사들을 설득하려고 대법원장의 뜻을 전하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사단은 작년 10월9일 박재영 당시 판사가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로 결정한 뒤인 같은 달 13일 오전 신 대법관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찾아가 만났던 사실을 확인했다.

신 대법관은 "헌재에 계류된 사건이 많아서 빨리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말하러 갔는데 소장은 사건이 접수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다른 덕담만 해서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이 대법원장은 김 처장에게 조사 결과를 법적으로 평가하고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최송화 서울대 명예교수)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대법원장이 법조브로커 김홍수로부터 식사 등을 접대받은 부장판사 4명의 비위사건을 2007년 1월 윤리위에 회부한 적이 있지만 대법관 관련 사건이 회부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대법원장은 심의 결과에 따라 법관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또 전국 법원장회의 또는 수석부장회의를 열어 임의배당 예규 등 이번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