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는 부침이 심한 곳이다.

한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천하를 호령하던 팀도 불과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예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부천 신세계도 그런 경우였다.

여자프로농구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정선민, 양정옥, 장선형, 이언주 등 쟁쟁한 멤버들을 앞세워 우승 4회, 준우승 2회 등을 했지만 정선민, 이언주 등이 팀을 떠나면서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정인교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을 재건한 신세계는 2008-2009 시즌에 4강 플레이오프에서 안산 신한은행에 졌지만 21승19패로 2003년 여름리그 이후 처음으로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며 다시 궤도에 올라섰다.

정규리그에서 37승3패를 기록한 신한은행을 상대로 한 4강전에서도 비록 3패로 물러났지만 매 경기 선전을 펼쳐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놨다.

신세계와 같은 팀이 또 있다.

바로 춘천 우리은행이다.

상업은행 시절이던 1958년 창단해 국내 최초의 여자농구팀이라는 자부심이 남다른 우리은행은 2003년 겨울리그 통합우승을 시작으로 2003년 여름리그 챔피언전 우승 등 챔프전 정상에 네 차례나 오르며 2000년대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최고 용병'으로 이름을 날렸던 타미카 캐칭의 가세에 힘입은 바 크지만 2005년 겨울리그에서는 캐칭 없이도 통합우승을 일궈 탄탄한 전력을 인정받았다.

김영옥, 김계령, 조혜진, 김은혜, 이종애 등 포지션 별로 쟁쟁한 스타급 선수들이 포진해 상대를 압도했고 캐칭, 켈리 밀러 등 똘똘한 외국인 선수들도 힘을 보탰다.

또 결국은 불미스런 일로 물러났지만 당시만 해도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평을 들었던 박명수 감독도 항상 자신감이 충만한 모습이었다.

통합 우승을 세 번 차지할 때 정규리그 성적은 42승18패로 승률이 무려 70%나 됐다.

지금이야 신한은행이 승률 9할을 달성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어마어마한 승률이었다.

춘천으로 원정 가는 팀들은 대부분 1패를 하고 올 마음을 먹고 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이후 김영옥, 이종애 등이 팀을 떠나고 조혜진도 은퇴했지만 김은경 등을 영입하고 이경은, 김보미, 원진아, 김진영 등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아 우리은행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2007년 4월 박명수 감독이 좋지 않은 일로 사퇴하면서 팀이 갑자기 와해됐다.

그 해 5월에 박건연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혔지만 한 번 어지럽혀진 팀 분위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경은, 김보미, 원진아, 김진영 등 가능성 있다던 선수들은 모조리 다른 팀으로 옮겨갔고 남은 선수들도 좀처럼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전력의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던 외국인 선수 제도가 하필 이때부터 없어진 것도 우리은행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2008-2009 시즌이 끝난 뒤 물러난 박건연 전 감독은 "시즌 도중에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취재할 것이 있다고 수시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팀 분위기가 흐려진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라고 아쉬워했다.

팀은 2007-2008 시즌에 11승24패로 6개 팀 가운데 5위, 이번 시즌에는 7승33패로 최하위에 그쳤다.

2008-2009 시즌 도중에는 선수 부상 등이 겹치면서 가용 인원이 부족해 은퇴했던 조혜진 코치가 현역으로 깜짝 복귀해야 할 정도였다.

박건연 전 감독은 말 그대로 '난파선'을 수리하고 물러나는 역할이었다는 평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새 사령탑을 물색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그러나 2009-2010 시즌에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정규리그 마지막 두 경기에서 모두 이기며 분위기를 새롭게 했고 최종전이었던 지난달 28일 삼성생명을 꺾은 뒤에는 홈 팬들 앞에서 '51년 전통, 우리나라 첫 번째 여자농구단. 2009-2010 시즌엔 꼭 변화된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희망은 충분하다.

2008-2009 시즌 도중에 신인 1순위로 대형 가드 박혜진을 뽑아 앞선을 강화했고 김계령과 홍현희가 지키는 골밑은 어느 구단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또 이번 시즌 부상으로 40경기 가운데 23경기에만 나온 슈터 김은혜도 다음 시즌을 벼르고 있다.

게다가 다음 시즌부터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우리은행에는 불리한 이야기가 아닐 터다.

최고(最高)의 팀에서 이젠 최고(最古)라는 자존심 밖에 남지 않은 우리은행이 다시 가장 높은 자리를 향해 도전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