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하이딩 국제전람관.이른 아침인 7시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채용박람회가 개막된 오전 9시에는 1㎞ 이상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모두 석 · 박사급 실업자들.100여개 일자리를 놓고 1만명이 넘는 구직자가 몰렸다.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중국 최고 대학 졸업자들은 물론 해외 유학파들도 끼어 있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실업 쓰나미의 단면이다.

프랑스 파리의 변호사부터 중국의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실업자가 급증하고,이들의 시위가 빈발해지면서 정치 · 사회적 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테러보다 실업이 최대의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장)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각국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실업과의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실업대란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테러보다 무서운 실업공포"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07년 말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가 미국에서만 이미 360만명을 실직시킨 데 이어 연말까지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의 추가 실업자를 양산할 전망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 전했다. 실업률이 1992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7.6%로 치솟은 미국에선 월가 고급 인력들조차 재취업이 '낙타 바늘귀 뚫기'만큼 어려운 실정이다. 기아자동차의 협력부품업체인 세원아메리카가 조지아주 공장에서 일할 직원 300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자 수천명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 롤리더럼 국제공항 근처에 문을 연 캄브리아스위트 호텔에는 28명을 뽑는다는 공고에 500명이 몰려왔다. 유럽의 실업은 이미 사회문제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스페인의 1월 실업률은 14.4%를 기록했고,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실업률도 8%를 넘어섰다. 프랑스 변호사인 나오미 룬퀴스트 오하욘(39)은 작년 말 일자리를 잃고 파리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여성의 성매매가 급증하고 있다.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여성 실업이 늘어나면서 대기업 임원들에게 비서로 일할 여성을 소개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명목상 비서지만 이들은 사실상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촌 일자리 아우성…임산부 해고금지 中선 '임신 붐'
라트비아 그리스 등 지역에선 젊은층의 높은 실업률 탓에 잦은 시위가 벌어지고,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파업 사태가 빚어졌다. 아이슬란드에선 금융위기와 실업에 항의하는 시위로 연립정부가 붕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최저임금제 폐지 일자리 나눠야

일본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각국도 수출이 감소하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중국에선 올 대졸자 중 610만명이 갈 곳이 없고 2000만명의 농민공이 일자리를 잃었다. 중국 정부는 최근 100만명의 대졸 인턴사원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대학 졸업생이 창업을 할 경우 5만위안(약 1000만원)을 대출해준다는 계획도 세웠다. 광둥성 인민대표대회에선 최저임금제도를 한시적으로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임금 수준을 대폭 낮춰 일자리를 공유하자는 취지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여직원들 사이에선 임신 붐이 생겨났다. 노동법에 "임신 출산 수유기의 여성에 대해서 고용주는 노동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1월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2.9% 감소한 대만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국민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업"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수도 도쿄 곳곳에는 천막으로 만들어진 노숙자촌이 만들어지고 있다. 히비야공원 내 설치된 '해맞이 노숙자촌'의 경우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수백명을 넘어섰다. 평생고용을 자랑하던 일본의 실업률은 4.5%로 치솟았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로버트 웨이드 교수는 "경제위기가 사회적 갈등으로 번져 일부 국가에선 정권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달했다"며 "올 봄에 실업발 사회 혼란이 정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유병연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