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차익 노린 일본, 미국계 사모펀드 입질
빌딩가격 25-30% 하락에 투자수익 기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 실물경제 위축 등으로 국내 빌딩 가격이 하락하면서 싼값에 좋은 물건을 잡기 위한 투자자들의 입질이 가시화되고 있다.

빌딩을 싸게 매수하면 임대수익률이 높아지고 추후 경기가 회복되면 시세차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안 국내 진출이 뜸했던 일본 등 해외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유망 빌딩 매수를 위한 물밑작업이 시작되면서 외환위기 때처럼 국내 빌딩시장을 외국자본이 독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빌딩가격 '급락'‥매물 더 늘 듯 = 19일 신영에셋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거래된 대형 빌딩(높이 10층 이상, 전체면적 3천305㎡ 이상)은 4조2천181억원으로 최근 10년 새 연간 빌딩 매각 금액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거래 건수는 38건으로 최근 10년간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2002년의 57건에 비해 19건이 감소했다.

빌딩 값이 급등하면서 거래 가격은 늘었지만 그에 따른 투자수익 감소로 실질 거래 건수는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작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 침체 여파로 국내 대형 빌딩가격도 타격을 받고 있다.

서울시내 매물로 나와 있는 대형 빌딩 시세가 전고점 대비 25-30%가량 하락한 것.
실제 서울 을지로 내외빌딩은 지난해 매맷값이 3.3㎡당 2천만원을 넘었지만 지난해 말 이보다 30%가량 떨어진 3.3㎡당 1천400만원선에 매각됐다.

또 최근 신생 자산운용회사인 제이알자산관리가 매입한 광화문 금호생명 빌딩도 3.3㎡당 1천600만-1천700만원보다 17-18%가량 낮은 1천400만원선에 거래됐다.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빌딩들도 대부분 고점 대비 25-35% 이상 내린 가격에 매각이 진행 중이다.

서울 도심의 A빌딩은 지난해 3.3㎡당 1천800만-2천만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현재 1천200만-1천300만원에, 지난해 2천만-2천100만원을 호가하던 강남의 B빌딩은 1천500만원에 각각 매각을 협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올 한 해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매물이 늘면서 당분간 빌딩 가격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신영에셋 홍순만 이사는 "건설, 조선, 자동차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사옥이나 보유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을 것"이라며 "올 한해 빌딩 거래 시장은 40여건, 4조3천억-5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 '위기는 기회' 해외 펀드 물밑작업 = 국내 빌딩 시장의 투자여건이 개선되면서 조만간 해외 사모 펀드들의 '빌딩 사냥'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는 외부로 드러나진 않고 있지만 미국, 일본, 유럽계를 중심으로 한 해외 사모펀드들이 국내 빌딩 매물에 대한 수익성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위기 때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국내 빌딩시장의 '큰 손'이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에 처한 현재는 주로 사모펀드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들은 국내 빌딩을 싼값에 사들여 시세차익을 올리는 것은 물론 달러나 엔화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도 기대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대규모 사모펀드를 관리하는 D사는 최근 국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서울, 부산 등지의 가격 싼 빌딩을 매수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신영에셋 홍순만 이사는 "국내 기업들이 실적 악화와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축소로 사옥 매입에 소극적인 반면 해외 사모펀드들은 수익률을 분석하며 매수 타이밍을 잡고 있다"며 "특히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된 일본계 자금이 환차익을 노리고 대거 유입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독자적인 투자보다는 최근 설립된 신생 자산운용회사들이나 국내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빌딩 매입에 나설 공산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저스트알 이종우 차장은 "앞으로 외국계 자본이나 외국 자본을 낀 국내 리츠, 펀드들이 빌딩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현재 가격에서 10%만 더 떨어지면 외국자본의 빌딩 사냥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