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맨 거액 연봉에 구조조정 칼날

내달 임금협상 시즌 돌입 '몸값 거품빼기' 본격화 예고
과도한 성과급이 문제 … 보너스허들制 도입 등 틀 바꿔야

헤드헌팅 업체인 H사 증권담당 임원인 A씨의 책상에는 이력서가 30여장이나 쌓여있다. 주로 외국계 증권사의 서울 지점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다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임원급 IB(투자은행)부문 인력들이다.


이들이 옛 직장에서 받았던 연봉은 평균 대략 10억원 선.30억원을 받았던 최고급 인력도 있다. 그러나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나서는 증권사가 없어 이들의 몸값은 수직 추락하고 있다. A씨는 11일 "과거엔 외국계 인력들이 외국 회사에서 받던 성과급이 얼마가 됐건 무조건 보장받는 조건으로 영입됐지만 요즘은 그런 보장을 받기는커녕 3억원 정도의 연봉이라도 좋으니 일자리를 구해달라는 구직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증권맨들의 몸값 거품이 구조조정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주가 급락으로 성과급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업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제에 몸값거품의 주원인인 성과급제도의 틀을 바꾸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원연봉은 이미 삭감 시작

대형사인 B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요새 담배가 부쩍 늘었다. 회사 수익이 예년보다 크게 부진한 상황에서 내달부터 본격화될 연봉협상에 대한 걱정이 머리에 꽉 차 있어서다. 아직 회사 측으로부터 리서치센터의 연봉 총액인 '샐러리 캡'을 공식 통보받지는 않았지만,지난해보다 최소 20~30%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 수를 이만큼 줄이거나,인력 구조조정을 피하려면 연봉을 대폭 삭감해야 할 판이다.

인사고과에서 비중이 큰 법인영업담당 임원이 "??????과장,△△△대리 같은 애널리스트들은 주 고객인 펀드매니저들의 평가가 너무 안좋다"며 구조조정 대상자를 은근히 거론하는 것도 부담이다.

연봉삭감 분위기는 월가 고급 인력들의 대량 실직을 배경으로 한다. 업계에서는 월가에서만 실직자가 15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분야 헤드헌팅 업체인 엣지컨설팅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인력난으로 연봉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며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은 오히려 저렴해진 월가 인력을 확보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일부 증권사들은 임원 연봉부터 삭감하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연봉의 20%를 삭감했고 NH투자증권도 10%를 깎았다. 우리투자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도 10~20% 줄이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거액 연봉으로 눈총을 받던 애널리스트와 IB부문 고참 직원들로 곧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을 20~30% 줄였다.

한 대형 증권사 사장은 "애널리스트들을 중심으로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강한 불만을 표명,대폭 삭감을 고려 중임을 시사했다.


◆성과급제도가 몸값거품 키워

증권업계가 고액 연봉자를 양산하게 된 것은 무분별한 성과급제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증권사들의 성과급제도는 전체 조직과 무관하게 개인 또는 팀의 성과에 따라 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성과급을 받기 위해 무리한 영업을 하고,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중견 증권사인 C사는 요즘 전직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임원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임원은 300억원대의 부동산PF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이미 거액의 인센티브를 받아갔지만 뒤늦게 계약서 상에 문제가 발생,회사는 아직까지도 자금 회수를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자금 회수를 못하게 된 것이 부동산PF팀의 과실이라고 판단해 회사가 소송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년에 걸쳐 나타나는 성과에 대해 계약 후 바로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보성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 직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실적만 올리면 보상을 받기 때문에 회사 전체 실적에 관심이 없다"며 "마치 택시 사납금처럼 매일 일정 금액을 회사에 넣으면 나머지 수익은 금액이 얼마든 간에 본인이 가져가는 식이어서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인중심 성과급제도가 문제

이에 따라 증권업계가 이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력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몸값거품을 키우는 성과급제도의 틀을 바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현재 대다수 외국계 증권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보너스 허들'이 성과급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너스 허들은 30만~50만달러가 넘는 고액 성과급을 받는 사람이 대상이다. 성과급의 절반 정도만 그 해에 지급하고,나머지는 2~3년 동안 나눠서 준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보너스 허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증권맨들이 장기간 한 회사에 근무할 수 있게 만들어 일명 '먹튀'와 같은 부작용을 방지한다"고 말했다.

'팀별 성과급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찬근 전 하나IB증권 사장은 "팀별로 성과급을 결정하다보니 팀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팀 이기주의'에 빠져 무리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 증권사들처럼 전체 조직의 성과를 먼저 따지고 다음에 팀별 성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성과보상 시스템이 회사의 발전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완/장경영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