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철완투수 4관왕 주역…"사회 초년생 마음으로 역전승" 다짐

1971년 7월 '제1회 봉황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린 서울 동대문구장.2만6000여 관중이 꽉 찬 가운데 경북고와 대광고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한 투수전을 벌이고 있었다. 경북고 투수는 예선 6게임을 완투하고 결승에도 선발 출전했다. 9회말 투아웃,끝내 마지막 타자를 돌려세우고 경북고가 1-0으로 이겼다. 완봉승을 거둔 투수는 최우수선수상과 함께 '철완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정현발 천보성 등과 함께 대통령배,청룡기,황금사자기까지 내리 우승하며 고교야구 전대미문의 4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그때의 경북고 투수가 38년 만에 우유회사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왔다. 바로 지난 7일 푸르밀(옛 롯데우유) 대표이사로 선임된 남우식씨(57)다. 운동선수 출신이 스포츠와 무관한 기업의 대표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남 대표는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수시절처럼 사회생활에서도 정상을 향해 매진한 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푸르밀은 2007년 4월 롯데그룹에서 분리된 롯데우유의 새 이름이자 우유 브랜드로,신격호 롯데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오너다.

투수 남우식은 고교 졸업 후에도 한양대,롯데를 거치며 대학야구선수권 대회 6회 우승,백호기 2회 우승,실업야구선수권 대회 2회 우승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9세이던 1981년 돌연 은퇴를 결심,롯데우유에 들어갔다. 스타 플레이어에서 하루 아침에 샐러리맨의 길을 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선수생활을 한없이 할 수 없는 데다 지도자로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어요. 고민 끝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이듬해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에서 입단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새 목표를 정한 이상 그 분야에서 꿈을 이루고 싶어서였단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일반 대졸 사원과 같은 4급 사원으로 영업 현장을 배치받았고 14년간 영업 현장을 누볐다. "처음엔 세금계산서라는 용어조차 몰랐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선후배 등에게 무조건 팔아 달라고 매달렸죠.엘리베이터에 냄새가 남는다고 해서 무거운 햄과 우유 상자를 어깨에 메고 10층 이상의 계단을 오르내린 날도 많았습니다. "

남 대표는 경북고 출신 야구인 모임인 '경구회'(부회장),한양대 야구인 모임 '한양패밀리'(회장) 등으로 아직도 야구계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그를 찾아오는 야구선수들이 적지 않다. 특히 운동을 그만둘 고민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는 "과감하게 다른 길을 찾으라고 조언한다"며 "한 분야(야구)만 경험해 봐서 자신의 소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푸르밀의 CEO로서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이미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해 두었다. 지금껏 주력이던 우유뿐 아니라 음료와 돼지고기 등을 가공 · 판매하는 육가공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남 대표는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좋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놔야 한다"며 "올해 새로운 제품과 마케팅 활동으로 부진했던 지난해 실적을 만회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글=김진수 기자/사진=임대철 인턴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