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불법대출 번번이 뒷북대응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주주의 불법대출 사건까지 잇따라 불거짐에 따라 저축은행에 대한 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2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매년 대주주의 사금화로 인해 부실 저축은행이 양상되는 데도 감독당국은 뒷북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불법대출에 대한 상시 감독체계를 강화하고 은행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해서도 6개월마다 적격성 심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저축銀 대주주 도덕적해이 심각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500억원 규모의 대주주 불법대출로 완전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전북저축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 미만 사유로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대주주 이모씨는 수십 개의 계좌를 동원해 우회적으로 대출을 받았고 이런 불법 대출이 모두 부실로 잡히면서 전북저축은행은 BIS 비율이 지난 6월 말 3.3%에서 9월 말 -25.5%로 추락했다.

이씨는 본인 소유의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을 사업자금과 건물신축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고 이중 일부는 회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총자산 규모가 1천918억 원에 불과한 이 저축은행은 대주주의 대규모 불법대출로 졸지에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대주주의 사금고화는 이 저축은행에서만 발생한 현상이 아니며 올해 들어 구조조정 대상이 된 7개 저축은행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 영업정지를 받은 경기 분당저축은행과 전북 현대저축은행에도 각각 320억 원, 370억 원 규모의 대주주 관련 불법 대출이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들어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3개 저축은행은 모두 불법대출로 부실이 생겼다"며 "BIS 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져 적기시정 조치를 받고 인수.합병(M&A) 대상이 된 4개 저축은행에도 대주주 신용공여를 비롯해 동일차주한도(자기자본의 25%), 거액신용공여 등 불법대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매년 대주주 불법대출이 2~3건 정도 발생해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예년에 비해 불법행위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 저축은행 감독체계 허점투성이
금융당국은 대주주 불법대출에는 대체로 수십 개의 타인명의 계좌가 동원되기 때문에 정밀 계좌추적을 실시하지 않으면 적발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금감원측은 "1년에 40~50개의 저축은행을 검사하는데 교묘하게 숨겨놓으면 잡기가 어렵다"며 "BIS 비율 5% 미만으로 자산과 부채를 실사할 때 혹은 제보를 받고 조사해 적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00개가 넘는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인력이 30~40명에 불과한 것도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업계에선 올해 들어 대주주 불법대출이 적발된 저축은행 이외에도 숨겨진 부실이 있는 저축은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업계의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경영감시 기능이 강해 대주주가 불법, 편법을 저지를 여지가 좁지만 중소형사의 경우 경영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고 전했다.

불법대출 사실이 적발되면 대출금액이 모두 부실채권으로 잡히기 때문에 해당 저축은행의 BIS 비율이 급락하고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부실화된 저축은행에는 공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국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데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부실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인 자금은 순수 공적자금 8조5천억원과 예금보험기금 지원자금 2조9천억원 등 총 11조4천억원에 달한다.

◇금감원 상시감독체계 가동..구조조정도 가속화
금감원도 뒤늦게 저축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나섰다.

정기검사시 대주주 불법대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다른 저축은행 계좌를 이용한 불법대출 은폐 등을 적발하는 상시감시 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저축은행에 대해 은행과 마찬가지로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실시해 불법 행위가 적발되면 지분 처분명령 등을 내릴 예정이다.

또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저축은행의 9월 말 기준 연체율은 16.0%로 6월 말보다 2%포인트나 뛰었다.

금융위는 올해 10월부터 부실해진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기업에 영업구역 이외 지역에도 지점을 설치할 수 있게 하는 등 혜택을 주고 있다.

또 저축은행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해 펀드 판매업, 신탁업과 함께 수납지급 대행, M&A 중개 등 부수 업무를 허용했으며 대형 저축은행이 지방은행과 같은 사업 모델을 갖출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업무범위를 추가 확대하고 영업규제를 풀 계획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M&A와 업무범위 확대를 통해 저축은행 업계의 대형화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M&A를 촉진할 방침이어서 내년에는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전망"이라며 "PF 대출 관련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악화되느냐 혹은 서민대출이 얼마나 부실화되느냐에 따라 구조조정의 수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