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결전 대비 체력비축 vs 민, 국회 완전점거

성탄절인 25일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여의도 정가는 '폭풍 속의 고요'가 휘감았다.

한나라당은 이날을 이른바 '입법전쟁'의 협상시한으로 정하고 휴전을 선언한 바 있다.

여야 의원과 보좌진, 당료들은 휴전 종료일인 이날 국회의사당 안팎에 대기, '포스트 성탄절'의 결전을 채비하며 신발끈을 바짝 조여매었다.

이날도 일부 물밑 전화접촉 시도 외에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여야의 대화는 실종 상태였다.

이때문에 쟁점법안 강행처리와 실력저지의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양측의 결심이 이미 굳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파국만이 남았다" "대회전은 29일이나 30일"이라는 긴장된 언어가 오갔다.

바야흐로 여야의 대치는 정점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국회, 민주당 완전점거속 초긴장 = 이날 국회는 민주당 판이었다.

오전 10시40분 국회의장실. 테이블 위에는 과일과 스낵류, 피로회복제 따위가 널려있었다.

밤샘한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벌겋게 충혈된 눈을 손으로 비비고 있었다.

송영길, 백재현 의원도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담요만 덮은 채 자고 일어나 아침은 도시락으로 때운 뒤였다.

8일째 의장실 점거농성이었다.

당 최고위원인 송 의원은 "수난 주간, 고난 주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예수도 다수결로 죽은 것이다.

(입법은) 최소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강행처리 방침을 비난했다.

이 의원도 "다수결의 원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쟁점법안이 첨예하게 맞붙은 핵심쟁점 상임위인 정무위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행정안전위의 성탄절 풍경도 의장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문방위에는 당 대표실에서 밤샘한 정세균 대표가 오전 격려차 방문했다.

정 대표는 밤샘한 보좌진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반납하고 애써줘 고맙다"며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것이니 승리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문방위실에는 '국민탄압, 언론탄압에 반대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천정배 의원 등 5명이 여기서 밤샘했다.

보좌진의 어린 자녀들 몇명이 보였고, 국회의장이 보낸 사과상자가 2개 있었다.

이어 정 대표는 원혜영 원내대표 등 동행한 의원들과 민주당이 점거중인 의장실로 가 "예산안 합의처리를 다 저버리고 누더기 직권상정한 것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정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등을 한나라당과 의장이 약속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결전을 앞두고 이날 하루 국회를 비웠다.

의원들은 대개 지역구로 발걸음을 향했다.

공식 회의는 잡지 않았다.

민주당과의 접촉도 사실상 시도하지 않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크리스마스에는 하루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약속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26일부터 숨가쁘게 진행될 야당과의 `법안 전쟁'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는 모양새다.

원내상황을 진두지휘하는 홍 원내대표 자신은 이날 자택이 아닌 모처에서 정국구상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야당과의 막판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가정한 법안처리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여론.명분' 선점 공방전 =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스스로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이날을 맞아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민주당을 강력 비판했다.

박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민주당은 기본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며 "자신들의 정책이 국민의 불신을 받은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고 국민이 선택한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원내대표는 "야당이 쇼를 하고 연출을 하면 법안의 정당성 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법안 강행처리가 자칫 '탄핵 후폭풍' 처럼 여론의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분리처리'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계류법안들을 A, B, C 등급으로 나누고 3개 등급을 모두 처리하는 방안과, 논란이 적은 2개 등급만 처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는 후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전날 민주당 원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접촉을 시도한데 이어 이날은 김 의장과 접촉하고 직권상정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과 관련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폭력사태에 대해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해머를 휘두르고 전기톱을 들었던 자들만이 아니라 의사당 반입한 지시한 자를 모두 색출하라"고 압박했다.

또 민주당의 의장실 등 점거에는 "대단한 떼거리 정치"라며 "이 법안, 저 법안에 요란스런 딱지를 붙이고 떼쓰는 떼사부일체 민주당"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비난을 퍼부으며 한나라당을 몰아붙였다.

최재성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회 본청 출입구에서 경위들이 의원들의 출입시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경위들로부터 압수한 메모를 보여주면서 "경위들에 의해 의원들이 사찰당하고 있다"며 의장의 해명과 책임을 촉구했다.

또 "국회의 본청 건물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할 것이라는 제보가 있다"며 "국회 본청 건물마저 권위주의 시대의 감시.사찰 대상이 되는 것을 의장이 자행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쟁점법안의 협상시한 종료에 대해 "한나라당 박 대표가 협상 의지도 없이 그냥 던져놓은 시한"이라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의장이 사과하고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외통위 폭력사태 관련자로 당 소속 문학진 의원이 고발된데 대해 "내 지시로 일어난 일인 만큼 나를 고발하라"고 나섰다.

민주당은 본회의 직권상정 'D-데이'에 촉각을 세웠다. 당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내일부터 의원들을 대기시키는 만큼 일요일께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할 것"이라며 "본회의장을 둘러보았더니 출입문이 전부 안쪽에서 빗장이 쳐있었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은 전날 중재안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제시한데 이어 이날도 거중조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었다.

권선택 원내대표는 쟁점법안 처리와 관련,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시 내부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직권상정이라도 합리적인 것은 우리가 참석할 수 있지만 상임위 상정 자체도 안된게 올라온다면 찬반 표결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노재현 김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