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

경제 관료들은 진정한 세제전문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세제개편안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제통(通)으로 자부심이 대단하고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까지 받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한 세제개편안마저 이토록 복잡다단한 것을 보면 공무원에게 근본적인 세제 개혁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무리가 아닌가 싶다.

지방 미분양 주택을 샀다가 양도세를 중과당하지 않으려면 '2년'과 '3억원'이라는 숫자를 외워야 한다. 2년은 양도세 중과가 한시적으로 면제되는 기간이고,3억원은 주택 가격이 그 이하여야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는 기준 금액이다. 이 숫자를 깜빡 잊고 3억원을 넘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사거나 2년 뒤에 등기하는 날에는 양도세를 중과당하게 생겼다.

고가주택을 살 때 단독명의로 할지,아니면 공동명의로 할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공동명의로 하면 종합부동산세가 반분(半分)돼 세금이 줄지만 단독명의로 하면 기초공제,노령자세액공제,장기보유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려는 주택의 가격뿐만 아니라 나이와 보유예상기간도 산식에 집어넣어야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알 수 있다. 단독명의 주택에 적용되는 기초공제금액은 '3억원'이고,장기보유는 '5년'과 '10년' 두 단계로 누진 적용되고,고령자 혜택은 '60세''65세''70세'로 차등 적용되는 사실도 반영해야 한다. 종부세 과세대상에서 아예 빼준다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덜커덕 매입했다가 기존에 받고 있는 종부세 공제혜택이 날아가는 위험도 피해야 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한 나라에 있으면서도 양도세가 중과되는 지역이 따로 있고,양도세가 중과되는 주택 가격기준은 지방과 서울이 다르고,1주택자 양도세가 면제되는 거주요건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각각의 기준과 숫자들을 외울 자신이 없다면 두툼한 법령집을 따로 준비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과거의 잘못된 세제를 한꺼번에 뜯어고치기가 어렵고 국회 논의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강남 집값이 또다시 오르면 폭동이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인심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마저 다른 태도를 보일 정도로 유동적이다. 미분양 주택을 정부가 예산으로 매입하겠다고 하면 "주택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는데 왜 피같은 세금을 쓰느냐"고 비판하다가도 정부가 다주택 보유를 허용해 미분양 주택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투기꾼 배를 불리는 정책"이라고 비난하게 마련이다.

이런 국민 정서에 휘둘리면 세제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국민의 담세능력을 골고루 반영하고 사회적인 낭비를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예측가능하다면 그것으로 세금 제도는 충분하다. 하지만 경제 관료들은 아직도 "부동산 경기를 봐가며…"라는 말을 한다. 세금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종부세를 완화했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의 대못이 사라지지 않는다. 경기 상황이 어떤지,누가 돈을 버는지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되고 알기 쉬운 세금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못하면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아보겠다던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