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하강하고 고용시장마저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내년 성장률 전망이 급전직하하면서 한국 경제가 경착륙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 내려잡은데 이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대 중후반이 될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0%로 내려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4% 성장을 내다본 정부의 수정 전망치를 재수정하고 그에 따른 거시경제 운용방향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정부가 경기 침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급전직하하는 경제전망

IMF는 24일 발표한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전망보고서에서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의 3.5%에서 1.5%포인트 낮춘 2.0%로 전망했다.

IMF는 6월에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4.3%로 본 뒤 10월에 3.5%로 낮췄고 이번에 또 하향 조정했다.

IMF는 국제 금융위기가 심화하고 있는데다 선진국 경제의 침체로 수출감소가 예상된다는 점을 하향조정 사유로 꼽았다.

IMF는 "아시아는 국제경제가 중대한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성장둔화 위험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의 금융시장 안정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좀 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홍콩 소재 UBS증권의 던컨 울드리지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내년에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3%를 기록해 외환위기 때인 1998년(-6.9%)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타 외국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3%대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은 지난달 27일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기존에 4.2%에서 2.2%로 낮췄고 골드만삭스는 4.3→3.9%, 메릴린치는 4.0→1.5%, 모건스탠리는 4.5→3.8%으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대부분 한 번 씩 수정 전망을 냈던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 역시 내년도 경제 성장률을 추가로 낮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DI는 이미 4.2%에서 3.3%로 전망을 수정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는 4.4→3.6%, LG경제연구원은 4.4→3.6%, 현대경제연구원 4.3→3.9%, 금융연구원 4.3→3.4% 등이다.

대부분의 수정 전망은 10월에 이뤄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7일 기존 전망치인 3.6%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되며 여타 민간연구기관도 이런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 수출.내수.투자 총체적 부진..경착륙 우려

이는 미국발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옮겨붙으며 세계 경기가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일제히 재정지출 확대 등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며 공조에 나섰지만 현재로선 아래로 내려앉는 경기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우리 뿐아니라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일제히 밑으로 향하고 있다.

IMF 수정전망치를 보면 홍콩과 싱가포르가 우리와 나란히 2.0%로 낮아졌고 일본은 -0.2% 성장으로 주저앉았다.

다만 한국의 낙폭(-1.5%포인트)이 중국(-0.8%포인트)과 인도(-0.6%포인트), 대만(-0.3%포인트) 등 다른 나라보다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외의존도가 76.1%였던 우리 경제로서는 전 세계적 경기 침체의 악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때문에 내년 수출을 한자릿수 증가에 그친 4천900억 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수출은 이미 이번 달부터 감소세로 전환된 것으로 관측된다.

11월 1~20일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3% 줄면서 월간 기준 수출이 실질적으로 6년만에 감소세로 뒤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내수 역시 시원찮다.

정부는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9월말에는 4.5%로 예상했지만 11월3일 수정예산안에서는 2.5%로 2%포인트나 낮춰잡았다.

실제 3분기 전국가구의 월평균 실질 소비 증가율은 -2.4%로 관련통계가 나온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 탓에 감산에 들어가는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공장 가동을 줄이는데도 재고는 쌓이면서 9월 제조업 재고율은 115.1%로 상승했다.

불안한 경제상황은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예산안에서 내년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증가율을 각각 9.0%와 4.0%로 예상했지만 수정 예산안에서는 4.0%와 1.5%로 각각 5.0%포인트와 2.5%포인트 낮춰잡았다.

이런 상황에 월 취업자 증가폭이 10만명에도 못 미치는 고용불안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 정부 후속 대책 나올까

정부는 이처럼 성장률 전망치가 줄줄이 떨어지고 경제지표들이 악화되고 있지만 일단 지난 3일 수정예산안에서 내놓은 전망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강만수 장관은 지난 21일 2% 중후반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현재로서는 공식 전망을 바꾸기보다는 이미 4% 성장에 맞춰 국회에 제출한 수정 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해 재정집행을 앞당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내년 전망의 재수정이나 새로운 수정예산안 마련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며 "내년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확정해 예산의 실물경제 활성화 효과를 최대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안팎의 경제여건이 시시각각으로 악화됨에 따라 필요할 경우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갖고 있다.

지난 3일 10조원의 기존 감세안과 고유가 대책에 더해 공공지출 11조원을 증액해 모두 33조원 규모인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효과가 미진할 경우, 연말께 수립할 2009년 경제운용방향에 보완대책을 집어넣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박용주 기자 prince@yna.co.kr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