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구제금융' 월가 개혁 떠맡았다

오바마, 차기 재무장관에 가이스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 내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과 동갑인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를 재무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금융ㆍ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가이스너의 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시장은 일단 오바마의 그런 안목을 환영했다.

가이스너는 재무부 재직 시절(1988∼2002년)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의 구제금융 지원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무부차관보였던 그는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의 훈령을 받고 한국에 급파돼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이경식 한은총재를 잇따라 만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JP모건의 베어스턴스 인수와 AIG 구제금융을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월가에서는 가이스너 총재가 리먼브러더스도 정부가 나서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리먼 파산은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초래한 치명적인 정책 실패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무부 근무 시절 재경관으로 일본에서 근무한 데다 2002년 IMF 정책개발 및 평가담당 이사를 지내 국제 금융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 초 클린턴 정부 시절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에 의해 차관보로 발탁된 뒤,30대 후반에 국제 담당 차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월가가 그의 재무부 장관 내정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최악의 금융위기를 풀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서다. 가이스너 총재는 그동안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선 정부가 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이런 소신이 정책에 반영되면 시장 불확실성이 줄고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가이스너 총재의 차기 재무장관 지명 소식이 전해진 21일(현지시간) 다우지수가 단숨에 494.13포인트(6.5%) 폭등하며 8000선을 회복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다. 도쿄 미쓰비시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크리스 러프키는 "금융시장을 아수라장에서 끌어낼 수 있는 환상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월가 금융사 경영이나 정치 경력이 없고 오직 정치관료 출신의 제한된 경력으로 의회의 협조를 이끌어 내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정치적 성향이 없기 때문에 양당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월가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호흡을 맞춰 다양한 금융사 유동성 지원제도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 재무부와 FRB 간 정책 협조가 원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이스너는 최근 전광우 금융위원장,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뉴욕에서 만나 국제금융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도 뉴욕 연방은행 주도로 이뤄졌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세금 및 노동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된 점은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

오바마 당선인은 22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취임 후 2년간 강력한 부양책을 실시,2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경제운영 구상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