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 isbang@olympus.co.kr>

얼마 전 가족과 둘러앉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내놓은 간장 맛이 특별했다. 출처를 물어봤더니,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문 종갓집에서 대대손손 이어져 온 장맛이라고 한다. 그 집에서는 음력 10월 우리 콩으로 삶아 만든 메주로 다음해 4월 간장을 담그는데,항아리 맨 위에 웃소금을 두껍게 얹어 비닐로 항아리를 봉해 놓고 추석까지 열어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윽고 세월이 쌓여 새까맣고 딱딱하게 굳어진 소금을 걷어 내면 푹 올라오는 햇간장을 집안 큰어른이 먼저 맛본다고 한다.

마치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생각으로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아빠,반찬도 좀 드세요. " 딸아이 말 소리에 흠칫 밥 그릇을 보니 간장과 함께 쓱쓱 비벼 놓은 밥을 거의 다 먹은 터인지라 잠시 머쓱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명품'의 맛이었다. 우수한 품질은 물론이고 만드는 이의 장인정신과 정성이 깃든 먹거리.명품이란 호사스럽고 비싼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조적이고 차별화된 생각과 노력을 담은 제품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요즘 명품은 어떤가. 소수의 상류층에 한정된 것에서 대중이 갖고 싶어 열망하는 기호품으로 변했다. 좀 더 튀어 보이고 있어 보이기 위해 명품이 남발되고 있다. 내면적인 가치가 담긴 진정한 명품을 찾기보다는 외관상 명품 티가 나는 것에 현혹되는 현실이 다소 씁쓸한 기분을 갖게 한다.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 전반의 내면적인 가치와 인간 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식과 문화를 회복하는 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필자의 회사가 거동이 불편하고 가난한 어르신들을 위해 '장수사진 찍어 드리기',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과 그 가정을 위한 조기 암 검진 캠페인 '체크 앤 스마일' 등을 펼치는 데 앞장 서는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있다. 이는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욕망의 대상이 겉모습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깃털과 모피로 장식했던 선사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겉모습이 화려한 명품에 얽매이지 말고,내면 세계를 채워 주는 생활 속의 명품을 찾아 보면 어떨까. 그리고 자신만의 내재 가치와 기준을 세워 스스로를 가장 소중한 명품 인생으로 다듬어 간다면 그 또한 명품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