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대해 재판에 넘겨진 지 13년 만에 벌금형이 확정됐다.

대법원1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권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국회법 등은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 다른 법률 위반 때는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각각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하고 있다.

권 의원은 1994∼1995년 민주노총 준비위원회(민노준) 위원장 신분으로 불법 집회를 주도하고, 1995년 11월12일 근로자와 학생 등 1만여명과 서울 연세대 정문에서 여의도 광장까지 행진하면서 모든 차로를 점거해 일반교통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1995년 12월 기소됐다.

구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의 2는 직접 근로관계를 맺은 근로자나 노조, 사용자 등을 제외한 제3자가 쟁의행위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권 의원은 노동쟁의조정법이 1996년 12월31일 폐지돼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이 사문화됐고, 이 조항이 국제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 헌장 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1천500만원으로 감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합법적인 노조연합체가 아니었던 민노준 등에서 집회를 주도한 것은 제3자 개입 행위에 해당하며 도로 완전 점거 등으로 공공질서를 해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이를 중단시키지 않은 피고인은 불법집회 공범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구 노동쟁의조정법이 폐지되고 개정법이 생겨 노조를 합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단체의 범위가 확대된 점 등에 비춰 10년 전 범행의 가벌성이 약화됐다는 이유로 감형했다.

대법원도 "당시 민노준 공동대표인 피고인이 전국적 연대 파업, 다른 파업 사업장 지원 등을 결정하고 전달한 것은 노사관계 당사자의 자주적인 의사 결정을 저해할 정도의 행위로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위반에 해당한다"며 권 의원의 상고를 기각했다.

권 의원은 애초 노동쟁의조정법과 기부금품모집법 위반 등 4개 혐의로 기소됐으나 기부금품모집법 위반죄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고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아내는 동안 재판이 정지돼 2000년 4월에서야 징역 3년이 구형됐고 다음해 1월 1심 판결이 나왔다.

또 사문화된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둘러싼 검찰과 피고인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권 의원이 2002년 대선과 올해 총선 등 정치 일정을 이유로 수차례 기일변경을 신청하는 등 재판이 더디게 진행돼 항소심 재판부는 2006년 1월에야 선고를 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