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면 주식투자 왜 안늘렸나
증시 하락하면 왜 투자하나 질책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 구축에 중점둬야


국민연금 기금은 '동네북'이다. 올해처럼 손실이 많이 나는 해에는 말할 것도 없다. 수익이 나도 욕을 들어먹기 일쑤다.

증시가 급등했던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왜 주식에 많이 투자하지 않아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느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반면 증시가 급락한 올해는 주식 비중을 늘리자 '국민의 종잣돈인 국민연금을 왜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지난 13일 열린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는 "국민연금의 지난 8월 말 주식부문 평가손실이 8조4812억원에 달했으며 특히 리먼 브러더스와 메릴린치 등 최근 문제를 일으킨 회사들에 대한 투자에서 1194억원의 손실이 확정됐다"(한나라당 유일호 의원)는 질책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평가금액이 낮아질 때마다 달러 선물을 매입했고 이는 달러 수요를 촉발시켜 환율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민주당 전혜숙 의원)는 비판도 들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8월부터 신흥시장(이머징마켓)에 19억2000만달러를 투자한 결과 23.4%의 손실률을 기록해 9월말 현재 4억5000만달러를 날렸다"(한나라당 손숙미 의원)는 지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운용 실패를 질타하는 자리였다.

문제는 이 같은 비판이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단기로 자산을 운용하도록 유인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시가평가를 통해 매월 수익률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또 1년에 두 차례 총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상반기 운용 현황에 대해서는 하반기에 국민연금연구원이 수익률 등의 정량 평가와 운용 시스템 등의 정성 평가 보고서를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로 넘긴다. 이 보고서는 다시 실무평가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에 올라간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변경 등 기금운용계획을 다시 짠다. 연초에 이뤄지는 하반기 평가에서는 국민연금연구원 외에 제로인 등 외부평가 기관까지 가세해 한 해 전체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운용 현황이 이처럼 '촘촘하게' 공개되고 평가되는 것은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공식적인 평가 외에도 국회와 여론 등으로부터 실질적인 단기 평가를 수차례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의원들이 이번 국감을 위해 국민연금공단 등에 요구한 국민연금 관련 자료만 수백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심지어 개별 투자 종목이나 특정일의 주식거래와 환헤지 내역을 알려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공개되면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이 모두 노출될 수 있다고 사정해 '환헤지 내역'만 공개하는 것으로 간신히 끝났지만,극단적인 단기 평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감 시즌 외에도 상시적인 자료 요구가 들어오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단기 성과에 관심이 쏠리면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기금 운용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2043년에는 2465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은 장기 계획에 따라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만큼 선물 등 파생상품으로 주식투자 위험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관투자가들이 하는 손절매를 하지 않는 것도 증시 변동 위험을 10년 이상의 기간으로 커버하겠다는 전략이다. 올 들어 주식 부문에서 본 손실도 대부분 평가손실,즉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이어서 장기투자를 하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일 수 있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장기 투자를 하는 국민연금은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평가해야 하는데도 단기 성과를 너무 따지는 것 같다"며 "수익률 공개도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