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녀가 데이트 중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스케줄을 짜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낮엔 몰라도 밤엔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가 이유를 따져묻자 여자는 망설이다 징크스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보름달이 뜬 밤에 데이트하면 이별한다는데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가 딱 그렇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럼 그날 데이트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하니 방송국에 가겠다고 한다. 옥신각신 다투는 동안 누군가 옆에서 "데이트 중 바지에 벨트가 없으면 헤어진다더라.바지가 풀어지듯 마음도 풀어지니까"라고 떠든다. 벨트를 매지 않은 걸 확인한 남자는 놀라 사라지고 옆사람은 말한다.

"커플 깨는 일 별 것 아니야.아무 것도 아닌 말 몇 마디만 들려줘도 자기들끼리 고민하고 싸우다 갈라선단 말이야." 최근 한 대학에서 공연된 연극 '징크스 벨이 울린다'의 요지다. 벨트와 이별 운운한 사람은 커플 브레이커.야쿠자 두목의 부탁을 받고 그 아들과 여자친구가 결별하도록 만들기 위해 징크스를 이용한 것이다.

징크스란 개미잡이(Jynx torquilla)라는 고대 그리스의 마술용 새 이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모르면 몰라도 일단 알게 되면 도리 없이 사로잡히게 되는 불길한 징후다. 병원같은 건물에서 가급적 4층이나 204호처럼 4자(字)가 든 방을 피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것도 있고 개인적인 것도 있다.

'내가 보면 우리 편이 진다'거나 '시험 전 머리를 감으면 망친다' 같은 것들이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당시 생겨난 '골대를 맞히는 팀은 패한다'처럼 특정시기에 퍼지는 것도 있다. 인과관계와 상관없는 우연이라도 한번 번지면 걷잡기 힘들고 어쩌다 같은 일이 일어나면 한층 더 강력해진다.

커플 브레이커는 단언한다. "징크스 따위에 넘어가 헤어지는 커플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 "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어려울수록 징크스는 늘어난다. 불안한 탓이다. 다소 둔하면 상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괜한 징크스에 시달리지 말고 매사 편히 대처할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