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정희성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전문

세속을 떠나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가는 신부님 수녀님들을 놓고 이 무슨 해괴한 농담인가. 인류 존속의 원천이자 갓난 아기에겐 목숨과도 같은 '젓'이 가차없이 희화화됐다. 생활의 대부분을 기도와 명상으로 채우는 수녀님들이 대화를 직접 들었다면 고개를 홱 돌렸을까,아니면 악의 없는 말의 유희에 잔잔한 웃음을 보냈을까. 나이를 먹어갈 수록 세상은 존엄하지도 저속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본의 아니게 태어나서 알 수 없는 어떤 섭리에 의해 그냥 살아질 뿐이 아닐까 하는 느낌.그래서 이런 짓궂은 농담에도 싱긋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