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식 매도가 전방위로 이뤄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주가와 채권가격,원화 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상 이 같은 트리플 약세 현상은 해당 국가의 금융시장이 무기력한 국면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가격 변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주체 간의 신뢰위기까지 겹칠 경우 금융시장을 넘어 그 나라 경제전체가 총체적 위기국면으로 악화되는 것이 과거 위기국가들의 전형적인 경로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트리플 약세 현상을 보일 만큼 증시를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여건과 관계없이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흡인요인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투자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외국인들을 밀어내는 유출요인이다.

현 시점에서 흡인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미국 금융사들이 신용위기가 지속돼 자본을 회수하는 경우다. 올 상반기까지 외국인 매도세는 이 요인이 컸으나 최근 들어서는 신용위기가 진정국면에 들어가고 있고,추가적인 자본확충도 자원부국과 상품시장에서 이뤄지고 있어 이제는 이 요인에 의한 외국인 매도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최근 외국인이 매도하는 주요인은 우리 측에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경제성장률,기업순익과 같은 경제 기초여건이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아 오히려 워런 버핏 등이 연일 한국 증시가 유망하다고 말하는 상황 속에서 정작 외국인이 많이 팔고 있는 점이다.

한 나라의 부가가치는 주로 민간이 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초여건은 좋은데 외국인이 매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책요인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중에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에서 외환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을 가장 두려워한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지난달 한국이 순채무국으로 전락했다고 보고 있다.

내부사정이 어떻든간에 한국처럼 대외 채권.채무상의 지위가 순채무국으로 돌아섰다면 외화가 더 필요해 환율이 오르는 국면이 올 것이라고 누구나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외국인들은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국 증시에서 이미 투자해 놓은 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정책대응도 문제다. 외국인 매도가 기초요건에 크게 기인하지 않는 데도 여전히 경제가 괜찮다는 '펀더멘털론'을 들고 나온다든가,국제기준으로 순채무국으로 전락했다고 평가가 나오는 데도 "이번에는 외화부채가 채권 성격을 지닌 것이 많아 종전과 다르다"라고 발언한다면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정책당국자에게 되묻고 싶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이유다. 공식적으로 언급한 정책기조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현 정부 출범 초에 성장 우선,8월 초엔 인플레 우선,다시 최근에는 성장 우선 쪽으로 환율 등의 정책을 운영하는 것으로 감지된다면 외국인들이 신규로 투자하거나 기존 투자를 유지할 유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외국인 매도세를 진정시켜야 한다. 외국인 매도요인을 따져보면 정책수단은 쉽게 나온다. 시급한 것부터 꼽으라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외화관리와 해석,정책의 일관성 유지,경제주체 간의 신뢰회복 등이다.

덧붙인다면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외국인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풀어줄 수 있는 상시적인 한국경제 설명회를 개최할 것을 권한다. 최근 외국인들은 한국경제의 궁금증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는 각료가 없으며 물어볼 창구와 기회도 없다고 말한다. 정책 당국자들은 실체를 모르면 더 불안해지는 게 외국인들의 심리라는 점을 차제에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