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융권에서는 퇴직연금 유치전쟁이 한창이다. 그동안 기업들이 퇴직금을 쌓아뒀던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에 대한 법인세 감면이 2010년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이 주어져 시장이 급신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상장 제약업체인 A사가 지난달 중순 실시한 퇴직연금사업자 선정에는 은행 증권 보험 등 거의 전 금융권에 걸쳐 49개사가 참여했다. 한 증권사는 원금보장형 주식연계증권(ELS)의 수익률을 연 7.4%까지 제시했고 제안서 제출 시한이 임박해서는 연 8.0%를 주겠다는 업체도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정기예금 금리보다 1~2%포인트나 높게 수익률을 제시하면서까지 치열한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실적을 쌓아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려는 포석에서다.

4일 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4조442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은행이 43.2%인 1조7459억원을 유치했으며 생명보험사 1조5701억원(38.8%),증권사 4339억원(10.7%) 등의 순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내년 이후 급성장할 전망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은 2015년 가입자 수 493만명,적립 규모 8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최대 150조원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급신장할 자산관리시장


이 같은 퇴직연금 유치전은 본격적인 자산관리시장 선점 경쟁에 앞선 전초전이라는 평가다. 자산관리시장은 퇴직연금에다 가계자산이 펀드 등 투자자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국내 자본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핵심 분야가 될 것으로 꼽힌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국내 자산관리시장 규모는 2007년 말 4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연평균 20%대의 성장을 이어가 2012년에는 10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펀드 퇴직연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랩어카운트 주식연계증권(ELS) 신탁 등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은행 예금과 순수 보험상품은 제외한 규모다.

박상순 BCG 이사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가계자산이 부동산 중심에서 금융자산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가계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2006년 말 기준)은 80%인 데 비해 금융자산은 20%에 그치고 있다.

특히 저금리 상황에서는 예금보다 펀드나 퇴직연금 등 투자자산으로 이동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재칠 증권연구원 박사는 "자통법 시행에 따른 자산운용사의 증가와 펀드 상품의 다양화, 판매망 확대 등이 국내 자산관리 시장의 확대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는 펀드시장 확대가 큰 요인이다. 백창기 동양투신운용 사장은 "현재 350조원인 한국 펀드시장 규모는 10년 후 1000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펀드 비율과 국내 GPD 성장률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수준은 될 것이란 얘기다.

◆증권사 공격경영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자산관리 부문 확대를 위해 주식 펀드 등의 수수료를 인하하고 CMA 금리를 연 5.3%까지 올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동양종금증권 등은 자산관리를 중심으로 한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2005년 전 지점 및 전 직원의 프라이빗뱅킹(PB)화를 선언한 후 1000명의 PB를 두고 있다. 직원 10명 중 4명꼴이다. 6월 기준 77조원인 자산관리 규모를 2010년까지 100조원으로 확대,자산관리 전문회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방침이다.

동양종금증권은 업계 최대 규모의 전국 지점망(7월 말 168개)과 CMA를 통해 넓어진 고객 기반을 자산관리영업으로 적극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10년 내에 자산관리 규모 100조원 및 고객 수 500만명 달성이라는 목표도 갖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전 직원 PB화 교육을 통해 종합자산관리를 위한 인재를 육성하고 지점도 단순한 위탁점포가 아닌 종합관리점 형식의 '금융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현재 152개인 지점을 꾸준히 늘리고 전문적인 자산관리 지원 프로그램의 개발과 상품의 다양성 등을 통해 고객에게 더욱 전문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신탁업과 장외파생상품 발행 허용에 따라 전통적인 유가증권에서 여타 투자자산에 이르기까지 자산관리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밖에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자산관리를 IB와 함께 향후 수익원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육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