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도 안성시 계동마을의 한 주물공장.가마솥의 재료인 고철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꼭 60년대 대장간을 연상시킨다. 한 쪽에서 부자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기술자들과 함께 용광로에서 섭씨 1850도로 펄펄 끓는 쇳물을 받아 가마솥 모양의 거푸집(틀)에 붓고 있었다.

"작업이 잘 됩니까"라고 묻자 들은 척도 않고 쇳물 붓는 데만 열중이다. 한참 후에야 대답이 돌아온다. "음! 잘 부어졌군."

이들이 4대째 무쇠(선철)로 전통 가마솥 맥을 잇고 있는 안성주물의 김종훈씨(78.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 주물장)와 성태씨(44.전수자) 부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솥 공장으로 5~10단계의 수작업으로 다양한 크기의 솥을 만들고 있다. 최근 웰빙 영향으로 솥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미니 가마솥'을 만드는 등 현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김 주물장은 "중국산에 치이고 산업화로 인해 전기밥솥에 자리를 내줬지만 구수한 밥과 누룽지,숭늉맛은 가마솥이 제격"이라며 "전통 가업을 잇는다는 자부심만은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안성주물의 역사는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북 청원군 북이면에 살던 김 주물장의 할아버지 김대선씨가 유기(놋쇠)로 유명한 안성으로 이사와 유기공장에서 놋쇠 다루는 일을 하다 독립,가마솥을 만들면서부터다. 뒤를 이어 김 주물장의 아버지 김순성씨(1970년 작고)가 1924년 안성시 봉산동 물문거리에 132㎡ 규모의 공장을 세워 15명의 직원과 함께 월 20여개의 가마솥을 만들면서 기반을 다졌다. 김 주물장은 "일제 강점기에는 가마솥의 원재료인 쇠를 배급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고철을 구입해서 솥을 만들었다"며 "제품은 경기 충청 일대에 내다 팔았다"고 전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일을 돕던 김 주물장은 22세이던 1953년 대학(수원농대 농학과 50학번)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받는다. "당시 아버지는 고령이어서 공장에서 일하던 김 주물장의 친구에게 공장을 맡겼는데 이 친구가 숙련공 일부를 빼내 독립하면서 공장이 문을 닫을 판이었죠.이런 상황을 누가 두고 보겠습니까. "

안성주물의 가마솥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제품이 달릴 정도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면서 양은냄비가 나오고 새마을운동으로 입식부엌이 도입되면서 수요가 점차 줄어들었다. 김 주물장은 1980년 현재의 계동마을로 공장을 옮겨 가마솥 외에 연탄난로와 새마을보일러를 만들었다. "석유가 귀할 때여서 연탄난로와 보일러는 불티났습니다. 트럭이 공장 앞에서 기다릴 정도였으니까요. " 당시 안성주물은 직원 50명에 연 매출 70억원으로 최고의 전성기였다.

차남 성태씨는 1988년 군에서 제대하면서 가업을 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쇳물을 다루는 것은 위험하니 다른 일을 하라고 권유받았지만 3대를 이어온 가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팔과 다리에는 쇳물에 데인 흉터가 여러 곳 남아 있다.

그는 "1995년부터 중국산이 범람하면서 가마솥 수요가 크게 줄었다"며 "특히 중국산은 원산지 표시가 없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으로 혼동한다"고 말했다. "지름 62㎝짜리 가마솥(쇠죽을 끓이거나 메주콩을 삶을 때 씀)의 경우 중국산은 무게가 34㎏으로 두께가 얇고 가볍다. 가격도 우리 제품(무게 50㎏,39만원 선)의 6분의 1에 불과합니다. " 그는 "얼마 전 한 고객이 전화를 해 1~2년밖에 쓰지 않았는데 솥 바닥에 구멍이 났다고 항의를 해왔다"며 "그래서 안성주물은 솥을 시장에 팔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전화를 끊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성주물은 인터넷과 공장에서만 솥을 판매한다.



그는 2002년 전통 기법을 유지하면서 누룽지 맛을 낼 수 있도록 현대화한 '미니 가마솥'을 내놓았다. 이 솥은 아내의 제안으로 밥을 할 때 물이 넘쳐 영양 손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솥 뚜껑이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실용특허를 받았다. 또 뜨거운 솥뚜껑을 쉽게 들 수 있도록 나무 손잡이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잘 팔릴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100여년을 이어온 전통 가마솥의 크기를 변형시킨 미니 솥은 웰빙 바람을 타고 지금까지 1만개 이상 팔리는 등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안성주물은 포스코에서 무쇠를 구입해 요즘 1주일에 약 200개의 솥을 만들고 있다. 그는 "안성 가마솥은 한번 사가면 15~30년을 쓸 수 있어 단골이 없다"며 "주로 입소문을 통해 미니 솥은 월 150개,가마솥은 월 50개 정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명품 소문이 알려지면서 각종 전통행사나 종가집 등 전통 가옥 보수를 위해 전국에서 주문이 오고 있다. 안성 가마솥은 경남 의령의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생가 복원에도 쓰였고 경기도 이천 쌀 축제에는 조리 가능한 솥으로는 가장 큰 지름 150㎝ 가마솥을 공급했다. 그는 "요즘 연매출은 6억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최고의 명품을 만드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성=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