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 한성대 교수·경제학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정치파업이 일어나고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노사관계 경쟁력지수가 항상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사가 상호 협력을 통해 신노사문화를 정착시키고 회사를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는 노사협력선언이 이달 15일 현재 1167건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의 431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경총 조사에 의하면 임금교섭을 사측에 위임하거나 교섭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기업의 비율이 지난 7일 현재 67.5%로 전년 같은 기간의 37.7%보다 1.8배 늘었다.

특히 이 같은 노사협력선언의 확산이 과거와는 달리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결과이기보다는 어려운 경제여건과 회사의 상황을 같이 고민하는 노와 사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노와 사를 떠나서 회사가 경쟁력이 있어야만 회사가 발전하고,그래야만 고용이 안정되고 높은 처우수준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노조와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노사관계 개혁의 전조가 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또한 고유가,원자재의 국제가격 폭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노와 사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사례가 확산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관련해 가장 당황스러워 하는 부분은 많은 노조가 회사를 타도의 대상 내지 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본사에까지 원정 투쟁을 가는 강경노조로 인해 많은 외국자본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노사협력선언의 확산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한 대외의 부정적인 시각을 완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다. 노사협력선언이나 무파업선언을 하는 기업들 중에는 과거 격렬한 노사분규를 경험하면서 '노사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면 결국은 노와 사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을 체험한 기업이 많다.

어용이라는 강경파의 비난에도 불구,노사협력선언을 한 한 기업의 노조위원장은 "역사적으로 당나라가 멸망한 이유도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좋아하면 망한다. 불법파업으로 징계받고,집행부가 해고되고,임금도 안오르고 하니 조합원들의 마음도 떠나고,결국 노조집행부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생의 길을 찾는 게 최선의 대안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노사협력선언을 한 많은 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항의 하나는 신뢰형성을 위한 노사간의 노력,특히 사용자 측의 가시적인 조치가 지속돼 왔다는 것이다. 노루페인트의 경우 외환위기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를 자제하고,정리해고를 어쩔 수 없이 했다 할지라도 회사가 어려움을 극복하면 전원 복직시키는 등 근로자들이 회사가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그래서 이 회사는 10년 동안 임금인상을 노조가 사용자측에 위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30여 년간 무분규,무파업 사업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경기고속은 4년째 임금인상폭 결정을 노동조합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노와 사 간에 그만큼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불법파업에 나서고 있는 현대차 등 강성 노동조합이 귀 기울일 일이다.

확산되는 노사협력선언이 단순히 일과성 행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노사협력선언이 생산현장의 혁신으로 이어져 생산성 향상이나 부가가치 제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노사가 공동으로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