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외 개방을 중시하는 국제경제 전문가다. 합리적 시장주의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노태우 정부 이후 정부의 색깔과 관계없이 경제정책 입안에 참여해온 특이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그가 대외 개방과 개혁,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MB노믹스의 적임자로 평가받으며 청와대에 입성한 배경이다.

그는 1973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전공은 거시경제였지만 금융 복지 노동 교육 등의 분야도 다뤘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않았다. 문민정부 초기엔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준비 사무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OECD 가입에 크게 기여했다. 초대 OECD 담당 공사를 역임했다. 박사 학위를 미국(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받았고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개방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외국 경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에는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과 조세연구원장직을 맡았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KDI 원장으로 발탁돼,3년간 국책연구소를 이끌면서 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노태우,김영삼,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노믹스'를 세우는 데 일조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경제수석 시절,그는 줄곧 '그림자 참모론'을 주장했다. 티나게 나서지 않은 이유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내각 사이의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한 비서진은 "김 전 수석이 성격상 언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경제 주체들 간 물밑 조정을 하는 데 한시도 소홀이 한 적은 없었다"고 전한다. 청와대에서 그의 생활은 말 그대로 '워커홀릭'이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김 전 수석은 부하 직원들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저녁 약속이 있더라도 끝나고 들르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KDI 원장 재직시 토.일요일 없이 출근해 각종 보고 문건 외에 국제기구 발간 보고서까지 모두 챙겨 읽는 등 다독(多讀)과 근면으로 유명했다. 바둑 당구 테니스 탁구 등 취미활동도 한번 빠져들면 그야말로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경기고 동문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장승우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경기고가 낳은 3대 천재'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