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 < 중소기업청장 hongsukwoo@hanmail.net >

지난해 봄입니다.뭐가 바빴었는지,급히 움직이다가 사무실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를 부딪쳤습니다.무언가가 찢어지는,그런 기분 나쁜 느낌이 들더군요.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을 꺼내보니 액정화면이 먹통입니다.아마도 모서리가 휴대폰과 바로 부딪친 모양입니다.곧바로 6만원을 주고 수리했지만,휴대폰을 볼 때마다 안 써도 될 돈을 썼다는 생각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저녁 때 집에 들어가니 아내의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등산 갔다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져 큰일 날 뻔했다나요.오른 손바닥은 껍질이 제법 많이 벗겨졌고,무릎 아래도 긁힌 자국이 선명합니다.하마터면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칠 뻔했는데 나무에 매달려서 용케 무사했다며 상황 설명을 열심히 하더군요.

'아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액정화면이 깨졌구나.내가 액땜을 해줬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네.^^*' 이런 생각이 드니 6만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살다보면 닮는다고 하지만,멀리 떨어져서도 위기를 도와주는 초능력이 생기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며칠 뒤 다리 상처를 좀 보자니까,숙녀는 다친 곳을 보여주는 법이 아니라면서 보여 주지 않습니다.멍 자국 보여주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니 아내는 아직도 수줍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뒤입니다.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아내는 집안 일로 외출하고 없었습니다.얼마 전 아내가 샀다는 코트가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있는 것을 보니 큰 애가 택배를 받아놓고 나간 모양입니다.내용이 궁금해서 포장을 조심스럽게 풀고 안을 살짝 들여다 보았습니다.예상대로 베이지색 코트임을 확인하고는,아내가 포장을 풀면서 느낄 즐거움을 행여 빼앗을까봐 조심스럽게 원래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그리고 얼마 뒤에 들어온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당신 옷 왔더라.한번 입어봐."

"옷이 배달되었으면 주름가지 않도록 옷장에 걸어 놓아야지,자기 옷 아니라고 그냥 두면 어떻게 해요.^^*"

몇 달 전,멀리서도 아내의 위급상황을 알아 차렸던 그 초능력이 갑자기 무색해졌습니다.'초능력 소통 부부'도 이런 것을 보면 정말로 어려운 것이 '소통'인가 봅니다.그래도 웃으면서 대꾸해 준 아내가 대견합니다.만약 아내가 언성을 높였더라면 그 다음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