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신고에 따른 상응조치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도 빠지면 북한의 대외경제 환경이 개선돼 만성적인 경제난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다른 제재조치들이 남아 있고 북한의 실패한 경제정책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 등만으로 단기간에 북한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북한의 대내외 경제여건이 호전되는 과정의 본격적인 시발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장기적으로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점진적으로 이뤄질 각종 제재의 해제 초입에서도 교역, 금융거래,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경협 확대 등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될 경우 북한은 미국의 수출관리법과 수출관리규정, 무기수출통제법, 국제금융기관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테러관련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 제한, 군수품 수출 및 재수출 금지, 국제금융기관에 의한 지원 제한 등의 제재 굴레에서 어느 정도 풀려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수출관리법 및 수출관리규정에 따라 군수물자 외에도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수 있는 민수용 품목(상품, 기술, 소프트웨어 포함)의 대북 수출에 대해서도 미국산 요소가 최종가격에 10% 이상 포함된 경우 재수출로 간주, 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에 대해서까지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통제하고 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재수출로 간주하는 기준인 미국산 요소의 비율이 25%로 상향 조정돼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의 대북 수출과 투자 제한이 상당히 완화된다.

그 결과 남북 경제협력에서 큰 걸림돌인 컴퓨터 등 전략물자의 북송 문제도 완화돼 개성공단 등지로 설비 반출이 더 쉬워지고 경협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

북한 김일성대 교수 출신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26일 "테러지원국 해제는 당장 중국, 러시아 등 북한이 거래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쌍무적인 경제관계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면서 "거래 품목을 제한받았거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했던 해당국들의 제약들이 풀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의 적용이 실질적으로 해제되면 중기적으로 북한 상품이 미국시장이나 선진국 시장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환경이 조성된다"면서 "북한의 경제 여건을 활용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로 북한 내부 산업의 활성화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국제금융기관법에 의해 국제금융기구의 미국측 집행이사는 대북 금융지원에 의무적으로 반대표를 던지도록 돼 있지만,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시 이런 장애물도 사라진다.

아울러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후 국제기구의 의무사항을 준수할 의사를 밝힌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금융기구의 가입도 훨씬 수월해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12월 통일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할 경우 정책협의와 경제통계 제출 의무, 개혁개방의 확대 요구 등으로 인해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겠지만 북한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각종 지원을 받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다만 제재 해제 초기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긴급 수혈성 자금 지원"은 가능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지원은 북한의 개혁.개방 확대가 전제되지 않으면 용이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2000년 4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시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차관 공여 가 25억~45억 달러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이 규모의 자금으로는 북한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데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많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함께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로 북한은 3천170만달러로 미 의회조사국(CRS)이 추정하는 자신들의 미국내 동결자산을 되찾을 수 있다.

적성국교역법의 적용 종료로 그 법에 따른 북한 상품의 대미 수입 제한도 철폐되지만, 이미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때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로 북한 상품의 미국시장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적성국교역법에 따른 제재는 피할 수 있지만, 미국내법에 따라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최혜국대우를 받지 못해 고관세라는 장벽은 여전히 남게 된다.

현재 미국이 북한에 적용하는 고관세율(Column 2)은 정상교역관계(NTR), 일반특혜관세제도(GSP)의 지위에 있는 국가에 적용되는 저관세율(Column 1)보다 2~10배 높은 수준이어서 북한 상품이 미국 시장에진출하더라도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산주의 국가나 인권침해국의 범주에 들어 있는 북한은 미국 수출입은행의 대출.보험.보증 금지(미국수출입은행법),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 금지(대외원조법), 해외민간투자공사의 보증 금지(해외민간투자공사법, 교역법) 등의 제재도 계속 받는다.

이처럼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다른 각종 경제제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당장 북한 경제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북한이 본격적인 대미 관계정상화 및 국제사회 편입 과정에 들어섬으로써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그동안 핵문제에 따른 불확실성과 미국 정부의 규제가 대북투자에 걸림돌이 돼왔다"고 상기시키고 "북한은 경제성장을 위한 종자돈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미관계 개선에 따라 유입되는 외부자본은 경제회생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