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요르드·올레순
노르캅 너머로 이어지는 E39번 도로따라 펼쳐지는 '노르웨이안 그린'에 탄성 절로


한순간 당황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함께 들어온 아홉 명의 일행을 놓친 것이다.

생면부지의 땅 노르웨이 남서부의 도시 스타방게르 공항에서다.

일행의 짐 한 개가 오지 않아 좀 늦게 출발하겠거니 여유를 부린 게 탈이었다.

먼저 세관을 빠져나와 기다리기도 꽤 오래 기다렸다.

공항 주변 사진을 찍고 안내데스크에 가 이 지역 관광브로셔며 지도를 구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행은 정해진 뱃시간에 쫓겼을 게다. 일정표 상의 다음 목적지는 베르겐이었다.

베르겐 공항 파업으로 유난히 많은 여행객이 몰린 스타방게르 공항은 북새통이었고,배가 기다리는 시내로 향하는 버스 역시 미어터졌다.

모두들 어련히 따라오겠거니 하며 버스에 오르기 전 서로를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휴대폰에 전원을 넣었다. 곧바로 수신음이 불안하게 울렸다. 발신자표시 맨 앞에 +82와 열 자리 번호가 떴다. 일행 중 하나였다. 로밍상태는 위태위태했다. 상대편의 다급한 목소리는 끊겼다 이어지기를 거듭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기도 했다. 수신 바가 커지는 쪽을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간신히 연결된 휴대폰의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배는 오후 4시40분 출발,시내까지는 버스로 20∼30분 그리고 시계는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버스 승강장에 이어진 줄은 다음 버스도 모자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대절 택시는 300달러를 불렀다.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버스나 기차 타고 갑니다. 베르겐에서 합류해요."

충전상태를 알리는 바가 달랑 한 개 남았다. 진짜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전원을 꺼두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니 까닭 모르게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물어 물어 혼자 하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그런 여행을 꿈꿔왔고,이제 짧지만 그 기회가 왔다. 예정됐던 배를 타고 질러가서는 보지 못할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의 속살을 혼자 느낀다는 것에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스타방게르는 영국 리버풀과 함께 '2008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도시니 험한 꼴을 당하는 일은 없겠다 싶었다.

공항 2층 은행에서 갖고 있던 달러를 박박 긁어 노르웨이 크로네로 환전했다. 버스비는 크로네로만 받기 때문이다. 1달러에 4.9062크로네.69달러를 받은 캐시어는 "시내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라"는 말과 함께 238.53크로네를 건네주었다. 시내까지 버스비는 57크로네니까,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겼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뜻밖의 상황에 떠오른 것은 뭉크의 '절규' 이미지가 아니라 그리그의 '페리귄트' 제1 모음곡의 1번 '아침 분위기'의 선율이었다.

■피요르드 해안 E39번 도로에서 찾은 '노르웨이안 그린'

스타방게르 시내 래디슨 호텔 앞에 정차한 운전기사는 바로 앞 두 대의 키스트부센 버스를 가리켰다.

우선 친절히 안내를 해주겠다 싶은 호텔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다.

"ATM이요?" 프런트 여직원은 허리를 약간 굽혀 오른쪽을 보면서 팔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요 옆 길 건너 기차역에 있어요. 베르겐까지 버스비는 450크로네예요."

베르겐까지는 부산∼서울 거리.도착시간을 묻자,운전기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지로 12시께를 가리켰다.

넉넉잡아 6시간쯤 걸린다는 것이다.

시내를 빠져나온 버스는 피요르드 해안을 따라 노르웨이 최북단 노르캅 너머로 이어지는 E39번 도로에 올랐다.

버스는 쾌적했지만 빠르지는 않았다.

왕복 2차선.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아 내내 뻥 뚫렸지만 제한속도는 시속 70㎞를 넘지 않았다.

시속 50㎞로 묶인 터널도 이어졌다.

버스는 해저 223m를 달리는 5.9㎞ 길이의 바이피요르드 터널과 해저 133m,4.4㎞의 마스트라피요르드 터널 등을 지나 렌네쇠이에서 승객을 태운 채로 초대형 페리 속으로 성큼 들어갔다.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깊은 피요르드 해안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페리로 건너 길을 잇는 것이다.

터널로 막힌 바위산을 뚫고 페리로 바다를 건너뛰는 게 노르웨이식 축지법이다.

페리로 건너는 시간은 20여분.3층 전망선실에서의 커피 한 잔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다시 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눈부셨다.

왼쪽에 있다 오른쪽으로 오고는 하는 바다는 검푸르고,키 큰 나무 한 그루 없는 길가의 초원은 진초록으로 환했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 해는 아직 10시 방향에서 멈칫대고 있었다.

하루 해를 온전히 즐기려는 듯 하얀 털이 고운 양떼와 시커멓지만 깨끗한 소들이 초원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길처럼 흙이 드러난 데가 한 군데도 없어 깨끗했다.

해안의 바위도 적당히 검어 튀지 않았다.

일본의 합장옥처럼 급하게 경사진 지붕에 처마는 없으며,창이 많은 밝은 색상의 집들이 그림같이 어울려 초록을 더 짙게 했다.

'5월의 노르웨이안 그린'이란 말로밖에 그 초록의 느낌을 설명할 길을 달리 찾을 수 없었다.

'파워드 바이 네이처'(Powered by Nature)란 노르웨이 관광브랜드의 동력이 바로 그 노르웨이안 그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버스는 산드빅보그에서 또 한번 페리에 올랐다.

섬 사이 좁은 해로를 따라 건너편 오스까지 40분.10시가 넘어서야 깔리기 시작한 저녁 어스름 속에 버스는 베르겐 경계의 마지막 고개를 넘었다.

계단 모양으로 무리를 진 수천의 불빛이 가스등처럼 은은하게 붉은 빛을 발하며 달려왔다.

베르겐 항을 둘러싼 플뢰엔 산자락에 질서정연히 자리한 가정집들의 조명,바로 그 아름답다는 '베르겐의 야경'을 수놓는 불빛이었다.

버스가 베르겐 버스터미널에 들어서 그 긴 여행을 마친 시간은 11시30분.레스토랑에 자리한 일행은 아직 저녁식사를 끝내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한눈에 다 담지 못할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다음날 오후 8시.베르겐을 뒤로한 노르드노르게 호는 서 있는 듯 움직였다.

후티루튼 선사의 노르드노르게 호는 길이 123m,폭 4.7m의 1만1000t급 크루즈선이다.

파노라마 전망라운지와 선데크가 있는 최상층까지 7층 높이다.

최대 691명의 승객과 45대의 차량을 싣고 베르겐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키르케네스까지 피요르드해안의 34개 항구도시를 잇는 정기편이다.

편도 6일,왕복 11일 일정 중 자신이 원하는 항로를 택해 기항지 투어를 즐기고 돌아오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사실 크루즈선이라고 하기에는 격이 좀 떨어진다.

요즘 흔한 7만,8만t급 크루즈 여행을 한 번이라도 즐긴 이들의 눈에는 그렇다.

노르드노르게 호의 편의시설이라고는 7층 라운지와 4층 뷔페식당이 전부다.

그러나 노르웨이 피요르드 여행길에서는 크루즈선 내 시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배 밖의 피요르드 풍경이 워낙 강렬해서다.

노르드노르게 호는 이튿날 오전 올레순을 경유,피요르드의 안쪽 끝 마을 게이랑에르로 향했다.

올레순에서 스토르 피요르드와 선닐브스 피요르드를 지나 게이랑에르까지는 총 160㎞.선닐브스 피요르드의 끝인 힐레쉴트에서 게이랑에르까지 마지막 16㎞ 구간인 '게이랑에르 피요르드'가 하이라이트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송네,리세,하당에르를 포함한 노르웨이 4대 피요르드 중 으뜸.송네 피요르드의 지류인 내료이 피요르드와 함께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오른 '노르웨이 피요르드의 진주'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이름 그대로 창(槍)처럼 깊고 날카롭게 해안 깊숙이 파고든다.

일곱자매폭포와 맞은편의 청혼자폭포 등 산정의 눈녹은 물이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장관을 이룬다.

깎아지른 듯 치솟은 양 옆 절벽 위의 별장(힛떼)이며 농장 풍경도 그림 같다.

어떻게 그 높이 그 경사에 집을 지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만약 건너편 농장의 처녀를 연모한 총각이라면 목깨나 쉬었을 게 틀림없다.

어느 피요르드든 마찬가지로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를 다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높이 올라가야 한다.

이곳 풍경에 매료돼 그냥 눌러살기로 했다는 독일국적 가이드 카트리나는 플리달스주베 전망대로 안내한다.

전망대 뒤로는 해발 1500m의 달스니바 산이 우뚝하고 앞으로는 80m 깊이의 계곡이 아찔하다.

계곡 아래 훌레 마을과 초대형 크루즈선이 걸리버의 소인국의 그것처럼 작아 보인다.

마을 선착장 너머로 크루즈선이 정박 중인 검푸른 물길이 꼬리를 물고 휘어 있고 양 옆에는 물빛 만큼이나 검푸른 절벽이 치솟아 있다.

그 절벽 위 산꼭대기에 면사포를 쓴 것처럼 남아 있는 하얀 눈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의 또다른 전망 포인트는 '이글스 로드'라고도 불리는 외르네베겐.머리핀처럼 굽은 11개의 굽이길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한겨울이면 게이랑에르와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인 외르네베겐의 전망대는 게이랑에르를 향해 마지막으로 꺾여들어가는 웅장한 피요르드 물길과 달스니바 산을 배경으로 한 게이랑에르의 전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해안협곡이 파였을까.

그 비밀의 열쇠는 빙하가 쥐고 있다.

신생대 빙하시대의 북유럽은 만년설과 얼음의 땅이었다고 한다.

깊게는 3000m나 되었던 만년설은 아래로부터 얼음층으로 변했고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한 채 빙하로 흐르면서 곳곳이 험하게 뜯긴 V자 형태의 협곡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차 그 길고 날카로운 피요르드 해안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아르 누보 건축물의 종합선물세트 올레순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관광의 거점도시인 올레순은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릴 정도로 매력적이다.

인구 4만2000명의 한갓진 시골분위기지만 건축물 하나하나가 동화 속의 컬러 삽화처럼 예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불같이 일어났던 '아르 누보'(Art Nevou)양식의 건축물들이라고 한다.

아르 누보 건축물이 있는 도시는 많지만 도시 전체가 아르 누보 양식인 곳은 올레순이 유일하다.

이 아르 누보 도시는 대화재의 아픔 뒤에 탄생했다.

1904년 1월23일.모두가 잠든 새벽 2시15분,마을 서쪽의 마가린 공장에서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났다.

작은 불씨는 거대한 불기둥이 돼 북대서양의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 중앙에서 동쪽으로 사정없이 번졌다.

16시간이나 계속된 불길에 마을은 초토화됐다.

1000여채의 주택 중 850채가 전소됐다.

당시 인구 1만2000명 중 1만여명의 이재민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소방서 옆집에 살던 76세의 할머니 단 한 명만이 화마에 희생됐다는 것이다.

올레순이 잿더미가 됐다는 소식에 구호의 손길이 이어졌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를 7번이나 찾았던 독일의 빌헬름 2세가 급파한 구호선은 화재 발생 이틀 만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정부 주도 하의 도시재건 프로젝트도 곧바로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고 있던 젊은 노르웨이 건축가 50여명을 불러들였다.

모두들 아르 누보 건축양식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1907년까지 3년이란 짧은 기간에 대리석 등을 이용한 아르 누보 양식의 건물 350채가 도시 중심부에 지어졌다.

도시는 스스로를 태워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그렇게 재탄생했다.

사실 뭐가 아르 누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하나 모두 다른 건물의 둥근 첨탑,꽃이나 나무줄기,리본,사람이나 동물 등 다양한 이미지를 살린 장식이 수수하니 예쁘다.

층마다 다른 창틀의 모양이며 크기도 신선하다.

건물의 크기도 하나같이 아담해 위압적이지 않다.

고가타 보행자도로와 브로순뎃 운하를 거닐 때면 다락방의 창이 열리고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가 나와 인사를 건넬 것 같은 느낌이다.

피요르드와 마찬가지로 올레순에서도 될수록 높은 곳에 올라야 한다.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악슬라 산 전망대가 그곳이다.

911년 노르망디를 차지했으며 1066년 잉글랜드를 손에 넣은 정복왕 윌리암의 선조이기도 한 바이킹 왕 롤로의 동상이 서 있는 도시공원에서 418계단을 오르면 된다.

피요르드를 향해 좁고 길쭉하게 튀어나온 반도에 발달한 도심 풍경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다.

갯내음이 없는 바닷바람도 상큼하다.

브로순뎃 운하 근처의 아르누보 센터에서는 올레순 재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00년 전 약국이었던 이 건물 역시 아르 누보 양식의 건축물이다.

타임머신 형태로 재미있게 꾸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1904년 대화재 당시의 도시와 재건 모습을 영상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애틀랜틱 해양공원은 시내 서쪽으로 3㎞ 떨어진 해양공원.북유럽 최대 규모의 수족관이 있다.

피요르드 바다에 연결돼 있어 시원하다.

펭귄을 비롯해 1만여종의 이 지역 바다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순뫼레 박물관은 용인 민속촌 격인 야외박물관.목조건물의 지붕에 흙을 얹고 잔디를 키우는 피요르드 지방의 전통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집에 머물며 당시 생활양식을 체험할 수도 있다.

바이킹 시대의 선박도 복제,전시하고 있다.

올레순=글 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