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여기저기서 통합 얘기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의 스토리를 보면 대학은 인수 주체이고,정부출연연은 인수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통합설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정부조직 개편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내걸며 단행했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의 통합으로 각각 탄생됐다.

지난 시절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교육부는 정부 연구개발의 '빅4 부처'였고 보면 어떤 형태로든 연구시스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통합설은 바로 그런 변화의 예고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연구중심대학과 정부출연연인 KAIST와 생명연이 통합에 성공한다면 대학과 정부연구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일 수 있다.

또 이를 계기로 연구시장의 칸막이가 깨지고 세계적인 규모와 수준을 갖춘 연구중심대학,연구기업들이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통합의 당사자들과 정부의 자세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통합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KAIST는 그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통합을 발판으로 어떻게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할지 내부적인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때문에 KAIST가 시류에 편승해 손쉽게 예산이나 더 늘려보자는 속셈 아니냐는 혹평도 없지 않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통합이 성사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생명연의 자세도 문제 있다.

우선 비바람을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통합논의 자체를 막기에 급급하다.

통합을 전제로 생명연이 주도할 수 있는 모델을 왜 능동적으로 던지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생명연을 포함한 출연연들은 연구인력들이 계속 빠져나가고,정권 때마다 개혁 얘기가 터져나오는 본질적인 이유를 이제는 제대로 직시할 때도 됐다는 게 외부의 시각이다.

이들보다 더 한심한 것은 정부다.

뒤에서 조정하고,개입할 건 다 개입하면서 마치 제3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그렇다.

통합 당사자들이 모두 정부 예산을 받는 기관들인데도 정부가 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내걸었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민간주도로 가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구개발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정부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기초.원천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 철학에 맞는 연구시스템의 방향을 정부가 먼저 제시해야 옳다.

이를 근거로 왜 통합이 불가피한지,통합의 대안들은 무엇이 있을 수 있고,통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센티브가 필요한지 공개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만이 아니라 지식경제부도 마찬가지다.

지식경제부가 관장하는 산업기술 분야 출연연들은 이명박 정부가 내건 작은 정부,민간주도,그리고 기초.원천연구 확대 등의 기조로 보면 이보다 더한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내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