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23일 한미자유무역협정(FTA)를 `아주 결함있는 협정'으로 규정하고 사실상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벌써 한미 양국 행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올해 안 한미 FTA 비준이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 의원이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거나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왔다.

오바마는 지난 2월에도 의회 발언을 통해 한미 FTA가 미국의 노동 및 환경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오바마 발언의 영향력은 지난 2월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클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도 오바마는 현재 미 의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다수당인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다.

더군다나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의 대결에서 앞서 나가는 등 대통령 당선가능성도 있다.

오바마의 정치적 위상도 달라졌지만 한미 FTA를 반대하는 어조도 훨씬 강경해졌다.

오바마는 이날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아주 결함있는(badly flawed)" 협정이라고 지적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의회 투표를 위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아예 제출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현재 합의된 협정대로는 비준동의할 수 없다며 재협상을 요구한 것이다.

오바마가 강경한 입장을 밝힌 만큼 마찬가지로 그동안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바마가 이 시점에 이처럼 강경한 어조로 한미 FTA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여러 가지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오바마는 11월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민주당 경선에서 비록 대의원수를 더 많이 확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노동자층 지지에서는 힐러리에게 크게 뒤졌다.

미 노동계에선 FTA 체결로 인해 미국이 외국의 수출품에 내수시장을 내준 반면, 수출에선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따라서 오바마로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큰 규모의 FTA로 평가되는 한미 FTA를 타깃으로 삼아 반대입장을 보임으로써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노동자층의 지지를 끌어안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유추된다.

오바마가 이날 서한에서 한미 FTA 가운데 특히 자동차 관련 협상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거머쥐기 일보 직전인 오바마는 또 부시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세계무역주간 기념연설에서 한국을 비롯해 콜롬비아, 파나마와 체결한 FTA를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한 직후 오바마 의원실이 서한을 공개한 것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이날 공개된 서한의 작성일자는 하루 전인 22일로 돼 있었다.

오바마로선 현직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오는 11월 대선은 부시 정권의 연장이냐, 민주당 정권 탈환을 통한 변화냐라는 부시-오바마 대결구도로 선거를 이끌기 위한 계산이라는 것.
이 같은 셈법에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안팎에 그치는 등 최악의 수준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공교롭게도 오바마-부시 간 정면 충돌에서 빚어진 예상치 못한 '돌'이 한국에 떨어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데 그 파장의 심각성이 있다.

오바마가 한미 FTA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천명함에 따라 당장 연내 한미 FTA 비준에 '빨간불'이 켜졌다.

현재 미 의회 의석분포상 공화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한미 FTA 비준동의는 기대 난망인 게 현실이다.

그동안 누차 한미 FTA 재협상 불가라는 입장을 밝혀온 한미 양국 정부가 이제 와서 재협상에 나서기도 쉽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오는 9월이면 미 의회가 휴회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시간도 여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 타결 이후 한국에서 협상결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에는 `난기류' 조짐도 있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연내 한미 FTA 비준을 합의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연내 한미FTA 비준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여왔지만 미 의회의 한미FTA 비준동의 전망이 더 어두워지면서 국내 정치적으로도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