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20년간 도심 경전강의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 "성공만 좇는 삶 오래 못가"
서울지하철 분당선 개포동역 인근의 금강선원.음식점과 가게들이 즐비한 상업지역의 빌딩 4층에 있는 사찰에 들어서자 스님은 보이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는 보살(여성 신자)들만 분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선 스님이 경전 강의와 참선 지도에만 몰두하고 살림은 신자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안내를 받아 5층 구석방의 서재에 들어서자 스님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64).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통달했던 탄허 스님(1913~1983)의 직계 제자로 "무엇을 하든 통달하라"고 가르친 스승의 뒤를 이어 경전공부와 참선을 통한 수행과 실천을 강조한다.

1988년 금강선원을 개원해 20년 이상 도시인들에게 불법의 세계를 전하고 있는 혜거 스님에게 부처님오신날의 참뜻에 대해 물었다.

"내년이면 제가 출가한 지 50년이니 머리 깎은 뒤로는 마흔아홉번째 맞는 부처님오신날입니다.

근래에 와서 '부처님이 안 계셨다면 이 세상 최후 사람들은 어떻게 제도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옹선사 발원문에 '중생을 오랜 세월 동안 교화해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즉 마침내 부처도 중생도 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는데, 부처님의 이상은 부처도 중생도 종교도 없는 세계, 모든 사람이 부처의 경지에 이른 세계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오신날은 단순히 축하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계기로 삼아야지요.

그래야 세상이 두루 밝아집니다."

혜거 스님은 "우리는 지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기로에 서 있는데,업그레이드하려면 세상을 밝게 만들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과 학문을 성취한 사람 등이 인격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지향적, 성취지향적 사회를 향기로운 사회로 바꾸고 업그레이드하려면 인격적 완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 제나라는 부국강병을 내세웠고,노나라는 윤리도덕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물질을 강조하며 성공지향적 사회였던 제나라는 국민들이 기억도 못할 정도로 잊혀졌지만 정신을 강조했던 노나라는 자동차 번호판에 표시될 만큼 중국인들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성공지향적인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는 운동이 그래서 필요해요."

너나 없이 앞서려고만 하는 세상, 남을 밟고라도 이기려고 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얼굴에 가득하다.

혜거 스님은 "아이들 사교육에 쓰는 어마어마한 돈의 10분의 1만 엄마들이 자기 공부하는 데 써도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또 "경쟁지향 사회의 대안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보살정신"이라며 이를 토대로 한 실천운동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최근 ≪대승불교의 보살≫이라는 보살사상 안내서도 출간하신 것으로 압니다.

스님이 전개하는 보살운동은 어떤 취지를 담고 있습니까.

"대승불교의 중심 정신이 보살입니다.

보살운동은 바로 보살의 서원과 원력을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도 보살의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경전공부든 참선공부든 목표는 가치관의 향상입니다.

따라서 공부를 통해 가치관을 향상시키고 최고의 인격자가 돼 그렇게 살자는 뜻을 보살운동은 담고 있습니다."

―평소 강조하시는 경전공부와 참선이 실천적 측면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금강선원은 원래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여 시작됐습니다.

지난 20년간 이곳에서 공부한 분들을 집계하니 27만명이 넘더군요.

왜 이 분들이 공부하러 왔을까요?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이 없어서 선행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을 반드시 실천하도록,몸에 배서 꿈에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요 공부지요."

―불교를 공부하면 실제 생활에도 변화가 많이 옵니까.

"우리 선원에 오는 신자들이 매주 1500명가량 됩니다.

1년이면 1만5000명이 옵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북적대지요.

그런데 이 분들은 그냥 기도객이 아니라 불경을 한문 원전으로 공부하고 참선하러 옵니다.

불경을 읽고 교리를 분명히 알고 나면 당연히 생활에 변화가 오지요.

특히 공부를 시작하는 초발심(初發心) 때 대단히 많은 변화를 겪는데 시누.올케 간의 갈등이나 자녀와의 갈등이 대부분 해소되고 가정도 평안해집니다.

부인이 어쩌다 절에 안 가면 '왜 안 가느냐'고 남편이 챙길 정도니까요.

남자들도 이 공부를 해보면 직장에서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넘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해요."

―중.고생들한테도 참선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난 1~4월 120명의 청소년이 참선공부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이들이 쓴 참선일지를 보면 마음이 경쾌해졌다,미워하는 애가 있었는데 미움이 사라졌다,공부가 잘 돼 성적이 올랐다,머리가 맑아지고 학업에서 오는 불안감에서 벗어났다,공부가 즐거워졌다 등 긍정적인 변화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참선반이 끝난 뒤에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자발적으로 수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120명 가운데 80명이 수련을 계속하고 있어요.

모든 걸 공부에 바치고 매달리는 중고생으로선 뜻밖의 호응이죠."

―정말로 참선을 하면 공부가 잘 됩니까.

지난해엔 <15분 집중공부법>이라는 책도 내셨던데요.

"눈 가는 데 마음도 함께 가도록 하는 것이 참선 수행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지요.

가령 길을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마주치지만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기억을 못하는 건 건성으로 눈만 보고 마음은 함께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 가는 곳에 마음도 가라'는 게 이 공부법의 핵심입니다.

잠깐만 해봐도 효과를 느낍니다.

마음이 따라 간 것은 잘 잊지 않으니까요."

―눈 가는 데 마음도 가는 공부법은 화두를 드는 간화선과는 다른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불가에는 '여래선(如來禪)으로 들어가 간화선으로 나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래선은 부처님이 가르친 원래의 선인데, 부처님이 주제를 주고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공부법이죠.

가령 '네 몸을 관찰해보라'고 하면 어린 아이 때와 지금의 몸이 어떻게 다른가, 욕구가 몸에서 일어나는가 마음에서 일어나는가 등을 살펴 몸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집착을 끊게 됩니다.

또 '마음을 관찰해보라'고 하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일정한 마음이 있는가를 살펴 한시도 한결같지 않은 마음의 당처를 알게 되지요.

이렇게 주제를 갖고 몸과 마음,세상의 이치를 관찰하는 게 여래선입니다.

간화선은 이와 반대로 주제를 빼앗아버립니다.

지금 당장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요?

이 때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여래선이요, 스스로 풀고 나오라고 하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은 막연해서 힘들지만 그 관문을 뚫고 나오면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혜거 스님은 수행으로 정말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최상의 목표는 성불에 두되 그 준비부터 철저히 하라"고 했다.

부처님오신날, 욕심을 끊고 마음을 비운 자리에 무명(無明)을 밝히는 연등 하나 걸어두면 어떨까.


글=서화동/사진=김영우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