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금호동4가 금호14 주택재개발구역 내 20평짜리 연립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는 2급 장애인 황인순씨(50).

관절염이 심해 혼자 힘으로는 걸어다니지 못하는 데다 남편 김상복씨(50)도 3급 장애인이어서 정부 지원금 70만원이 소득의 전부다.

이 집의 전셋값은 4000만원(전 재산).재개발로 6월 말까지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재개발로 이주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호동 일대 전셋값이 1억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연속 거주 기간이 5년이 안 돼 임대아파트 입주도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무분별한 뉴타운·재개발로 2012년께 서울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40% 가까이가 사라져 서민주택 수급 대란이 우려된다.

그러나 관련 공무원들은 '양질'의 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명제에 몰두하고 있고,표에 눈이 먼 정치권은 뉴타운 추가 지정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6일 서울시 주택국이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주택 유형별 변화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09만4738호 수준이던 단독·다가구·다세대 주택이 2012년 67만3855호로 42만883호(38.5%) 줄어든다.

단독·다가구·다세대 주택이 서울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5%에서 22%로 급감한다.

대신 134만4745가구인 아파트(연립주택 포함)는 241만3389만가구로 늘어난다.

단독주택 재건축 지정 요건이 느슨한 점을 감안하면 2020년께는 서울시내 거의 대부분 지역이 재개발돼 서민주택이 사실상 사라진다.

이에 따라 서민주택 전세·매매가의 불안이 장기화되는 등 서민주택 수급 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분양가격(3.3㎡당 1787만원·지난해 기준)은 원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길음뉴타운에 거주하는 조합원과 세입자 중 뉴타운에 다시 입주한 경우가 17.1%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살던 곳에서 밀려난 원주민들은 대부분 기존에 살던 곳에서 지하철역 기준으로 세 정거장 이내 지역에 재정착하길 희망한다.

직장 학교 문제 등으로 기존 생활권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도 어렵다.

이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주변 지역의 매매·전세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실제 재개발이 활발한 동대문구에서는 원주민들이 경기 의정부까지 밀려나고 있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 중에서도 쫓겨나는 이들이 많다.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높아 추가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은평구 응암8구역의 경우 상당수 원주민 지분 평가액이 1억원 미만으로 나왔다.

이곳 분양가는 3.3㎡당 1300만~1400만원 선.80㎡(24평형)에 들어가려고 해도 2억원 이상의 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응암8구역 재개발 반대 비대위의 최성균씨(39)는 "20년 이상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지만 원주민의 85% 정도는 돈이 없어 지분을 팔고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주택이 급감하는 것은 2003년 이후 기존 재개발 외에 뉴타운,단독주택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도시정비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비사업 예정구역이 이전에 비해 3배(중복 지정 제외)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2003년 지정된 재개발 예정구역은 총 1153㏊였으나 여기에 단독주택 재건축구역 696.2㏊(2006년)와 뉴타운 2721.6㏊(2002~2005년)가 추가됐다.

서울 구로구 관계자는 "구내에 재개발·재건축추진지역 56개소,광역개발추진지역 16개소,뉴타운식 광역개발추진지역 4곳이 있어 사실상 구 전체가 개발지역이라고 보면 된다"며 "강북권의 일부 구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장영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박사는 "중·저가 주택,고가 주택 등이 적정 비율로 섞여 있어 소득에 따라 저가 주택에서 출발해 중산층용 주택,고급 주택 순으로 이사 다닐 수 있는 구조가 이상적"이라며 "저가 주택 재고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성근/이호기/이재철 기자 truth@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