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95년 2월 미국 정부의 태환용 금 준비금이 10분의1로 급감했다.

공황의 회오리 속에서 국가재정이 파산 직전까지 간 것이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JP 모건은 맨해튼에서 자가용 열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대통령을 만난 그는 비상수단으로 굵직굵직한 투자자들을 모아 국채인수 신디케이트를 만들고 그들이 갖고 있는 금으로 국채를 사도록 하면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진땀을 흘리는 대통령에게 자신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JP 모건은 미국 금융사상 가장 긴박한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과 만나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는 순간에도 시가 한 대를 태울 배짱까지 지니고 있었다.

#2.1907년 또다시 금융공황이 터졌다.

거의 모든 은행과 신탁회사들이 파산직전으로 몰렸고 몇몇 금융기관은 문을 닫았다.

10월22일 저녁 JP 모건은 맨해튼 호텔로 주요 은행장들을 불러모았다.

워싱턴에서 재무장관도 달려왔다.

그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신디케이트를 구성하고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자금을 무제한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정부는 이를 발표했다.

그러나 24일에는 주식시장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그는 다시 은행장들을 불러모아 2700만달러의 증시부양자금을 확보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증권거래소는 즉시 회생했다.

이 책에 묘사된 미국 금융역사의 극적인 순간들이다.

저자는 미국 텍사스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미국 정치ㆍ경제사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그는 미국 독립전쟁 이전부터 1907년 금융위기까지 미국 금융사의 핵심 이슈와 사건들을 인물 중심으로 엮어냈다.

빠른 문체와 생생한 묘사가 한 편의 대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저자에 따르면 140여년에 걸친 미국 화폐제도ㆍ중앙은행 관련 논쟁에서 가장 큰 화두는 '민주주의냐,자본주의냐'였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화폐 문제를 소수 독점 자본가들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고,자본가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가 다루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이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낸 '모순'의 한가운데에서 미국 금융역사의 부침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과 응전을 되풀이했다.

저자는 그 주인공들을 '머니 맨(Money Men)'이라고 부른다.

그는 화폐제도와 중앙은행을 두고 벌인 두 진영의 치열한 전쟁사,그 중에서도 거물 '머니 맨' 5명의 야망과 투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최초의 중앙은행 설립 때 해밀턴과 제퍼슨의 갈등,두 번째 중앙은행을 둘러싸고 잭슨 대통령과 비들 은행장이 벌인 난투극,남북전쟁 당시 미국 국채 판매 수수료를 둘러싸고 재무부와 쿡이 벌였던 신경전,금을 독차지하겠다던 굴드의 야망,금융공황 후 JP 모건을 미국 사회 '공공의 적'이자 '구세주'로 만들었던 화폐제도….

가난한 식민지에서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미국의 금융무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야심가들의 쟁투는 21세기 글로벌 금융 드라마의 '원작'에 해당한다.

특히 번역과 해설을 맡은 역자가 원서에 없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탄생 이후의 전개과정을 121쪽의 두툼한 부록으로 정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는 민주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원리가 100년 이상 치열하게 대립한 끝에 서로 포옹하는 과정을 '양경반조(兩鏡返照)의 철학'으로 설명한다.

세상 모든 것을 비춰주는 거울은 자신을 비추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보려면 다른 거울이 있어야 한다는 것.마주보는 두 개의 거울은 서로의 모습을 비추면서 스스로 깊이를 키워나간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서 20년을 근무한 그는 화폐금융의 원리와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미국과 한국의 차이점 등을 종횡무진의 씨ㆍ날줄로 엮어낸다.

중간중간에 붙인 '해설자 노트'도 촘촘하고 충실하다.

지금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은 세계 금융시스템을 움직이는 중추신경이자 글로벌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태풍의 눈'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과 함께 환율ㆍ금리 문제를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 동맥인 금융의 앞날을 알고 싶다면 그들의 과거를 보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와 닿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