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총수의 '전횡'이 외환위기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에 따라 총수에 대한 견제, 사외이사 비율 확대 등 지배구조 개선대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는 기업의 성과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김종석)이 27일 내놓은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기업가치 간의 관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험' 보고서(저자 조동근 명지대 교수, 변민식 명지대 겸임교수)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동안 계속해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24개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총수의 지분이 높은 업체가 경영성과는 더욱 양호하며 사외이사의 비율이 높을수록 성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지배주주 지분율을 횡축으로, 기업가치(ROA)를 종축으로 해 양자의 관계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역(逆)U자' 형태를 보여 처음에는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이다 일정 지분 이상에서는 '부(否)'의 관계로 역전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수익률을 극대화시켜주는 지배주주 지분율은 49-51%로 나타났는데 해당기간 지배주주의 지분 평균값은 22%이므로 대부분의 기업이 위치하는 영역은 '역 U자'의 왼쪽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배주주의 지분이 높을수록 경영성과가 양호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소유집중'이 재벌의 비효율을 낳는 요인이며 따라서 대주주 지분율을 낮추면 기업가치가 올라간다는 과거의 일부 연구결과가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 현실과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반면에 사외이사의 비율과 경영성과 간에는 '의미있는 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경영성과는 오히려 부정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계열사 지분, 소유지배 괴리도 등 어떤 지표를 이용하더라도 '소유권 이상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의 경영성과를 해친다'는 가설을 입증할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소수의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일삼은 일부 재벌그룹의 '변칙.반칙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제도적 환경이 크게 바뀌며 시장규율이 작동하기 시작한 외환위기 이후에는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행위'가 기업이익을 해칠 것으로 예단해서는 안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번 연구를 통해 지배주주 견제와 사외이사 비율 확대정책은 기업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서 "경영에는 속도가 중요하며 '민주적 경영'은 허구임을 실증적 연구 결과가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교수와 변민식 교수 등 보고서 공동저자들은 이 같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변화를 "기업은 학습조직이며 시장은 진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스스로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고 제도적으로도 실패를 초래한 요인들을 제거한만큼 과거의 잣대로 재벌폐해를 논하는 것은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