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이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인적청산' 작업이 당초 예상보다 큰 규모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보건복지부 산하 주요 기관장들의 사표가 전원 수리된 것을 비롯해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등 주요 부처의 산하기관장들이 앞다퉈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서는 김재현 토지공사 사장,박세흠 주택공사 사장,곽결호 수자원공사 사장,이재희 인천공항공사 사장 등이 사의를 표명했다.

노동부 산하기관 중에서도 근로복지공단의 김원배 이사장을 비롯해 박길상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김용달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권재철 한국고용정보원 원장 등이 사의를 표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산하 기관장들의 사표를 일괄 수리해,이날 자로 행정안전부에 면직을 요청했다.

김호식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김창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외에도 이용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과 국립암센터 유근영 원장,한국청소년상담원 이배근 원장,한국청소년수련원 이창식 이사장도 재신임을 받지 못하고 면직됐다.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도 사의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다.

다만 금융공기업 가운데 사의를 표명한 기관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전체 305개 공기업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임원 인사에 간여한 곳은 10곳도 안된다"고 말해 그만큼 물갈이 폭이 클 것임을 예고했다.


물갈이 3대 기준

관료 출신 임원들이 제1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다.

관료 출신을 대거 솎아낼 경우 '공기업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다.

관료집단이 공기업 요직을 대대로 독식해온 데 대한 혐오감과 근절의지 또한 강력하다.

최근 금융통화위원 3명에 대한 인선 과정을 보면 '관료 배격'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엿볼 수 있다.

그동안 금통위원 자리는 응당 재정경제부 출신들의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예상과 달리 3명 모두 교수 출신이 임명됐다.

청와대가 주도한 이번 인사에서 관료 출신은 후보군에조차 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 기준은 오직 하나,'노 모피아(No Mofia)'였다는 후문이다.

모피아란 재정경제부 관료나 그 출신들을 통칭하는 말로,옛 재정경제부의 영문약칭인 MOFE와 마피아를 합성해 만든 단어다.

지난 정권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참여정부 인사'들도 최우선 퇴출대상으로 꼽힌다.

이들의 경우 굳이 기준이라고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사표 제출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염치와 상식,정치적 금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자진사퇴를 유도하되 거부시엔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관료 출신이나 참여정부 인사가 아니라고 해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도 '챙겨줘야 할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공기업에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권력의 속성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경영실적이 부진한 경우,평판이 나쁘거나 비리의혹이 제기된 경우 등은 민간출신이라도 퇴출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

◆포장은 믿지 않는다


공모절차를 통해 선발됐다는 것도 임기보장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모절차는 사실상 허울에 불과했고,처음부터 정해놓은 내정자를 추인하는 형식일 뿐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공모절차를 없애고 차라리 솔직하게 정부에서 직접 임명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모라는 명분은 구 정권 인사들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도 구제 기준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정권 말기일수록 보은인사가 더 횡행하는 법인데 그 논리대로라면 이전 정권의 '알박기' 인사를 용인하라는 얘기밖에 안된다는 항변이다.

한 관계자는 "심지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인사동결을 요청했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케이스까지 있었다"며 "잔여임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그런 사람들을 가장 존중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나가면 쫓아낸다

새 정부는 사퇴권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방위 압박책을 쓸 태세다.

최근 시작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101개에 대한 경영평가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타깃이 된 인사에게는 평가에서 유무형의 불이익을 줘 '경영 실패자'로 몰아갈 것이라는 추측이 자자하다.

특히 올해 경영평가에서는 기관과 기관장뿐 아니라 감사까지 평가대상에 포함시켜 놓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정권의 보은인사 대상자들이 감사 자리에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평가는 새 정부 들어 처음 이뤄지는 것인 만큼 더욱 철저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실적이 부진하거나 혁신을 게을리 한 인사들에겐 혹독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도 큰 무기 중 하나다.

지난달부터 공공기관운영법에 명시된 공공기관 101개를 대상으로 전수감사에 착수했다.

김인식/류시훈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