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기업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여유있고 한가할 때 해야 할 이런 논의가 묘하게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면 더 자주 일어난다.

지금이 꼭 그런 시기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의 공포가 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원자재가격 폭등까지 겹치면서 수출중심의 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이때 말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이면 기업들마다 '비상경영'을 외치고 관련 업종단체를 내세워 정부에 읍소하러 다니는 게 경제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이달 초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재계 대표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강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새 정부 초기라서 경제계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업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기업에 대한 시각이 좌편향적인 게 사실이다.

전경련이 2003년 조사했을 때 초.중.고학생들이 기업의 목적을 사회기여(38.5%)로 보는 시각이 이익증대(39.2%)와 엇비슷했다.

같은 조사를 중국에서 했을 때 중국 학생들은 이익증대 47.2%,사회기여 28.1%로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행하면 좋은 당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을 기업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기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말대로 투자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익경영에 매진하는 것을 최고의,그리고 유일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랑받는 기업' 모델의 경우처럼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 고객 파트너 사회까지 이해당사자 모두를 아우르는 비즈니스모델을 강조하는 시각이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본연의 경영활동 자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위법을 저지르는 기업들이 분명히 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책임을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부여하는 순간, 자본주의체제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탄생과 활동,성장을 방해하는 핵심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을 반사회적인 조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나게 돼 있고 그런 의식을 바탕으로 정부의 규제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기업에는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사회적 책임을 기업뿐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의 과제로 생각하는 시각을 갖는 일이다.

정부는 물론이요 노동조합 가계 소비자들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정치집단이 중요하다.

이미 그런 분위기는 형성돼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다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노동계도 노총위원장의 전경련 방문에서 보듯 달라진 방향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책임을 사회 전반의 과제로 고양시킬 때 오히려 책임전가와 편가르기가 사라지고 사회 전체의 선진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