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 버드(early bird)'는 윗분들 얘기…

7일 오전 9시 과천 정부청사 정문 앞.업무 시간이 됐는데도 뛰는 공무원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등 '얼리 버드형 장관'을 맞은 경제부처의 출근길 풍경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장ㆍ차관의 '업무 시계'가 2시간가량 앞당겨졌다지만 국ㆍ과장급만 바빠졌지 일선 사무관급 이하 공무원들은 대다수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조기 출근'은 고사하고 감사원에서 정권 교체기를 맞아 오전 9시까지 정시 출근 하는지 주중 3일간 몇몇 경제부처를 대상으로 특별 점검까지 했지만 여전히 늦는 이가 나왔을 정도였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좀체 상사 눈치를 보지 않는 신세대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재정부의 한 사무관은 "장ㆍ차관이 일찍 나온다고 일도 없는데 새벽별 보며 출근해 눈도장이나 챙겨 두려는 건 촌스럽지 않느냐"며 "내 담당 업무가 회의 안건으로 잡힌 날이 아니면 굳이 '보여주기식'으로 출근 시간을 앞당길 생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취임 이후 강 장관과 최중경ㆍ배국환 두 차관은 오전 7시에서 7시30분 사이에 나오고 있다.국ㆍ과장급이야 언제 장ㆍ차관이 자기를 불러 보고를 받을지 몰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찍 나오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무관급 이하 공무원들까지 '알아서 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전 7시부터 보고를 받는 이 장관을 모시게 된 지경부도 마찬가지다.한 사무관은 "지식 기반 산업을 목표로 해 부처 이름까지 '지식경제'로 바꾸지 않았느냐"며 "일찍 일어나 밭을 한번이라도 더 갈면 수확이 나을 것이라는 식의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여주기식' 새벽 출근을 거부하는 신세대 공무원들도 새 정부 활동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점점 늘어나는 업무량을 어쩌지는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서민생활 안정대책'(지난 4일 발표)처럼 모든 경제부처가 실천 계획을 모으는 식의 대책 마련을 정부에 수시로 요구하고 있다.당연히 아이디어 회의가 잦아지고 자료 준비 및 보고 일정으로 몇몇 사무관은 늦게 퇴근하고 일찍 나오는 날이 많아진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얼리 버드형 장관'과 직접 관련이 없던 사회 부처들도 출근 시간이 앞당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공식적인 업무 개시 시간은 오전 9시지만 청와대 회의가 새벽 같이 열리니 관련 보고 및 자료 준비가 필요한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일찍 나와야 한다.

하지만 경제부처의 한 고참 과장은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이른바 'X세대'라서 그런지 바로 위 선배 사무관이나 일이 많아진 직속 과장의 눈치조차 보지 않는 '간 큰 사무관'이 늘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