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닻을 올렸지만 경제 환경은 어느 정권 출범 때 못지않게 어려운 편이다.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들썩이고 있고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금융 시장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에는 외환위기로,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에는 카드 대란 후유증으로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었다.

그때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 급한 불을 껐다.1998년에는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기업ㆍ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고 2003년에는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 수출경기를 부양하면서 어려운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올해는 다양한 대외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새 정부는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고 내수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단기간에 실효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어렵게 극복한 두 번의 위기

정부는 1997년,2003년 두 번의 위기를 어렵사리 극복했다.재정지출 확대,강력한 기업ㆍ금융 구조조정,인위적인 환율 정책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은 정책들이었지만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다급한 순간에서 벗어났다.

1997년 12월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후폭풍은 심각했다.경제성장률은 1997년 4.7%에서 1998년 -6.9%로 추락했고 2~3%대에서 안정됐던 실업률은 7.8%까지 급등했다.원ㆍ달러 환율이 2배로 오르면서 물가는 7.5%나 치솟았다.IMF가 우리나라에 강요했던 20%대의 초고금리는 많은 기업들을 부도로 내몰았다.

정부는 강력한 기업ㆍ금융 구조조정을 실시함과 동시에 내수 확충을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렸다.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물론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공공근로사업을 실시했다.변동환율제 도입으로 높은 환율을 유지해 수출이 증가한 것도 경제에 도움이 됐다.1997년 84억달러 적자였던 무역수지는 환율 급등으로 수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1998년 390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의 카드 위기는 사실상 정부가 추진했던 단기적인 경기 부양의 후유증이었다.정부가 카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소비를 촉진한 결과 대규모 신용불량 사태를 낳았고 이로 인해 2003년 이후 소비가 침체에 빠졌다.경제성장률은 2002년 7%에서 2003년 3.1%로 반토막이 났다.

신용불량 사태로 내수가 급격히 침체하자 정부는 수출경기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1998년 이후 지속적인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 때문에 원ㆍ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대규모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발행 등으로 재정이 소모되고 한국은행이 적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경기가 악화하는 것은 막았다.

◆쏟아지는 악재들,어떡하나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원자재 가격 급등,물가 4%에 육박,무역수지 54개월 만에 적자.새 정부는 '747(7% 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 공약을 내걸었고 올해 6% 성장을 약속했지만 당장 이 같은 악재들과 맞닥뜨렸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1월 소비자물가는 3.9%를 기록했다.투자와 소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작년 12월 소비재판매 증가율은 6%에서 2.6%로 낮아졌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경기 침체를 걱정하고 있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미국 성장률을 1.3~2%로 두 달 만에 0.5%포인트 낮출 정도다.미국 경기 악화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로 이미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다.

새 정부가 가진 경제 살리기 카드는 규제 철폐와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 촉진이다.경제에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주기에는 장기적인 조치들이다.금리정책을 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내수를 촉진해야 하지만 물가가 급등하고 있어 금리를 전격적으로 내리기도 어렵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경기가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어서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며 "하지만 경기가 더 악화된다면 금리를 인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하반기 유가가 안정될 전망이어서 물가 불안이 더 심각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