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은 결국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질병과 사망은 물론 재테크에 연금 기능까지 있다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보험 상품일수록 꼭 필요할 때 보장액이 너무 적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3일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업무 보고를 통해 차기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화합적 자유주의'를 제시했다.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되 더불어 사는 사회도 중시한다는 의미라는 게 인수위 측의 설명이다.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보수 진영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국가의 사회적 책임도 소홀히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말처럼만 된다면야 금상첨화이지만 현실은 어떤가.사회적 책임은 종종 개인 및 시장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화합보다는 모순 관계에 가깝다.그런데도 화합적 자유주의를 국정 철학으로 내놓은 것은 좌우의 개념을 뭉뚱그린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이다.'모든 것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으로 보이는 이유다.

인수위는 공적 자금을 동원해 신용 등급이 낮은 '금융 소외계층'의 이자 부담을 낮추겠다며 신용회복 특별대책을 내놨다.국가가 개인의 채무 부담을 낮춘다는 정책 목표는 '화합적'이지만 금융권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정책 수단은 '자유주의'와 충돌한다.결국 인수위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에 부딪쳐 실행 계획을 연기했다.

재개발ㆍ재건축 활성화와 강력한 개발이익 환수장치 도입을 동시에 약속한 것도 비슷하다.전자는 민간의 자율 없인 어려운 것인데도 공적 규제 강화를 사업 활성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것은 모순이다.

대통령은 신이 아니기에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다.명확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반대파를 설득해 내는 게 리더십의 요체다.차기 정부가 태동하는 인큐베이터에서부터 뼈대가 흔들려선 곤란하다.자칫 '좌파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며 지지층은 물론 반대 세력까지 끌어들이려다 집토끼마저 잃어버린 현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