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여행에서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충직한 심부름꾼 레오. 어느날 그가 사라지자 일행은 혼돈에 빠지고 여행은 중단된다.레오가 없어진 뒤에야 그가 단체의 책임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이며 훌륭한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리더십 이론의 새 지평을 연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섬김의 리더십)의 기본 아이디어는 레오의 머슴 같은 서비스 정신에서 나왔다. AT&T에서 경영 관련 교육과 연구를 담당했던 로버트 그린리프가 1977년 레오의 이야기를 담은 '동방으로의 여행'(헤르만 헤세)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매우 겸손한 자세로,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하면서 서번트 리더십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리더십의 위기와 반성

정치권에서 새롭게 대두된 서번트 리더십은 지난 시대 '리더십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요구를 한 지점으로 통합해내기는커녕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원천이 되고 말았다.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경제는 이미 세계 11위 규모로 성장했고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LG전자 등은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로 나아가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처럼 소수 권력집단 내지 소수 엘리트가 나라 경제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소수의 권력자와 엘리트가 전체를 지휘 통솔하기에는 국가 경제와 기업 규모가 너무 커졌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으로는 사회 각 분야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됐다.

이런 문제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조직이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게 된다.

◆서번트 리더십의 이론적 배경

1930~40년대에 널리 받아들여졌던 리더십 이론은 리더가 신체적,정신적,정서적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리더의 특징을 연구,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을 리더로 채용하거나 육성하는 데 활용했다.

1960년대는 리더가 처한 상황에 따라 리더십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상황론적 리더십 이론이 등장했다.

이는 남들보다 빠르게 목표와 과제를 달성해야 했던 산업화 시대를 뒷받침한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어지면서 변화추구형 리더십,비전추구형 리더십 등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섬김의 리더십으로 대변되는 서번트 리더십도 이 시기에 크게 발전했다.

영어의 서번트는 하인 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다.

리더는 다른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다.

정반대되는 개념이 하나로 통합돼 새로운 리더십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제일 먼저 서번트 리더십에 관한 책을 쓴 로버트 그린리프는 리더가 부하들을 위해 헌신하며 부하들의 리더십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번트 리더십의 전제 조건

리더가 구성원들을 섬기려면 먼저 자신을 서번트로 여겨야 한다.

지위가 높기 때문에 지휘하고 통솔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섬김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구성원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구성원들을 내 말을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로 본다면 섬김의 리더십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리더는 구성원들을 인격을 가진 존귀한 존재로 대우하고 자기 일에서 반드시 성장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현실에서 서번트 리더십이 제대로 기능하려면,리더는 먼저 공동체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한 다음,이에 대한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의식혁신과 교육활동이 중요

미국 인텔,시노버스 파이낸셜 등 '일하기에 훌륭한 포천 100대 기업'에 선정된 회사들의 다수는 이미 서번트 리더십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생명,LG화학,하나은행 등이 일하기에 훌륭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서번트 리더십을 도입하고 있다.

기업에서 시작된 서번트 리더십은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키스 엘리슨 하원의원은 지난 10월 미 의회 연설에서 2002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폴 웰스턴 상원의원을 추모하며 그를 서번트 리더라고 칭송했다.

이는 서번트 철학이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단적인 예다.

기업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과 공무원이 하나가 돼 국민을 섬기려면 단순히 서번트 리더십만 강조해선 안 된다.

거대한 관료조직이 국민과 기업 그리고 다양한 사회조직을 섬기려면 관료조직 내에 서비스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장관과 공무원과의 관계가 섬김의 관계로 재정립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공무원 조직 전체가 섬김의 조직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대대적인 의식혁신 활동과 지속적인 리더십 교육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공무원은 국가 목표를 위해 국민을 섬기고 학교와 교사는 교육 목표를 위해 학생을 섬겨야 한다.

또 기업과 기업의 리더는 구성원과 고객을 섬기고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환자를 섬기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치가 요구되고 있다.

이관응(성인교육학 박사, 엘테크리더십 개발원 대표) kwanlee@eltechtrust.com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