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여론 반발에 "계획없다"로 입장 선회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 견제를 위해 계엄령 선포까지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꺼냈다 여론의 화살을 온 몸에 받고 있다고 대만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야당인 국민당 궈쑤춘(郭素春) 의원은 "총통이 아프거나 미친 것 아니냐"는 반발을 쏟아냈다.

천 총통은 지난 25일 한 집회에서 내년초 총선을 국민당 자산의 환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와 동시에 치르는 방안에 대해 국민당의 반대가 이어지자 계엄령 재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에선 계엄령 발동을 제안하고 또 일부에선 선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며 중대하다.

우리는 이것들을 검토해왔다"고 말했다.

국민당 집권 시절인 1949년부터 1987년까지 계엄령이 계속되다 민진당의 극렬한 반대로 계엄령이 해제된지 20년만에 이번엔 민진당에 의해 계엄령 논의가 나오자 대만 여론이 아연해진 것은 물론이다.

천 총통의 계엄령 구상은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25개 현.시 가운데 18개 지방이 내년 1월12일 국민투표와 총선 투표를 동시 실시키로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기로 한데서 비롯됐다.

천 총통은 이들 지방 정부의 계획이 선거법을 위반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극약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민진당은 국민당이 집권기간에 부당 취득한 자산을 환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르는 것을 추진해왔고 국민당은 동시 투표가 민진당 지지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여 민진당의 입법원 장악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 분리 투표를 주장해왔다.

천 총통의 계엄령 발언에 여야 의원과 일반인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국민당 쑤치(蘇起) 의원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가 될 것"이라며 "계엄령이 선포되면 미국과 대만 관계도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진당 중진들도 말문을 잃은 듯 "할 말이 없다"며 논평을 거부했다.

여론의 반발이 격화되자 총통부는 대변인을 통해 "천 총통은 단지 야당의 비이성적인 국민투표 보이콧에 대한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천 총통도 26일 "계엄령을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뒤 "내 임기가 내년 5월20일 끝나는데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계엄령이 가져올 고통과 비극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