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안해도 과제만 제출하면 무조건 통과


#1.연세대 프레시맨 세미나(신입생 교양과정) '무선모형' 수업을 들었던 1학년 김모군은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았다.

수업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학기가 끝날 때 스스로 조립한 모형만 제출하면 점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통과(pass) 또는 낙제(no-pass)로 점수를 주기 때문에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도 없다.

그는 "지난해 이 수업을 들은 선배의 모형을 그대로 다시 제출하는 친구도 봤다"고 털어놨다.

연세대는 국내 최초로 1학년 대상 교양과정을 설치한 곳이다.

#2.미국 필라델피아주의 교양대학인 스와스모어대의 '줄기세포와 복제' 시간.12명의 학생들이 살아있는 쥐에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를 사용해 실험을 한다.

이 과목을 가르치는 초빙교수는 "직접 실험을 통해 배아와 줄기세포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업의 실험 결과는 필라델피아 줄기세포 학회에도 제출된다.

스와스모어는 4년 내내 교양만을 가르치는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ㆍLAC)' 랭킹 1위인 학교다.

◆가벼운 강좌만…평가시스템 부재

2000년 초 각 대학들은 교양 교육 강화를 위해 영어,국어,철학 등 일반교양이외에 1학년 '프레시맨 세미나'를 도입했다. 10여명의 학생이 교수와 친밀도를 높이고 진지한 토론과 대화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백화점 교양강좌 수준의 가벼운 과목이 주를 이룬다. 올해 연세대가 개설한 52개 프레시맨 세미나 과목 중에는 교수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을 하는‘너희가 사랑을 아느냐’를 비롯해 물리학과 교수가 동영상을 보며 마술을 가르치는 '해리포터 마술학교' ‘한강변 100㎞ 나눠 걷기’등이 있다.

옷 잘 입는 법을 가르쳐 주는 '생활과 패션' '현대만화 읽기'등의 과목을 개설한 고려대 학부대학도 연성화 정도로 보면 연세대와 다를 것이 없다.

지난 3월 30년 만에 교양 혁신을 단행한 하버드대는 국내 대학과는 딴판이다. 학생 지도 기능을 강화해 곳곳에 흩어진 학생 상담 시스템을 일원화했다. 학생 지도 전임 학장을 새로 선출했다.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교양은 구체적인 지식을 얻기보다는 인생과 진로를 결정하는 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상담 전임 교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세대의 경우 4500명인 1학년을 지도하는 교수는 단 16명뿐이다. 교수 한 사람이 200명의 개인 면담을 맡은 셈이다. 서울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도 전임 교수의 수가 6명에 불과해 교수 한 명당 500명의 학생을 책임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 교양 강의가 시간강사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연세대의 경우 25%가량이 시간강사다. 서울대와 고려대는 시간강사 비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서울 소재 대학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귀띔한다.

이처럼 시간강사의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교수들이 교양 강의를 꺼리기 때문이다. 교양 강의는 이제 막 학위를 딴 '제자'가 맡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양 강의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부족하다. 서울대는 핵심 교양과목 111개만 2년마다 평가한다. 나머지 400여개 과목의 경우 학생 수업 소감문만 받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강의 평가가 나빠서 폐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강의 평가가 안 좋더라도 권고 차원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명지대학이 강의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목’이라는 학교 설립자의 호를 걸고 기초교육대학을 운영 중인 이 대학은 학생 강의 평가에서 하위 10% 이하가 한 번 나오면 경고,두 번 나오면 강사를 강제 퇴출시킨다. 임기를 보장받는 교수도 '10% 이하' 판정이 두 번 나오면 특별교육을 받아야 한다.

◆美 전공없는 '교양중심大' 대안

미국 스와스모어처럼 교양 중심 대학(LAC) 도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LAC는 세부 전공보다 전반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고 학생 개개인의 인성을 계발하며 사회정의 의식을 폭넓게 기르는 것을 설립 목표로 삼고 있다. 졸업 후 전문성을 쌓고 싶으면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면 된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교양 중심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다"며 "국내에도 미국과 같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교양교육의 질 관리를 담당할 실권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려대 관계자는 "총장을 비롯한 대학 본부가 교양 강의의 컨셉트와 수준을 정하고 평가까지 담당하는 독립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