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변죽만 울렸다.

국민들은 유가 앙등과 물가 상승에 신음하고 있는데 정부는 끝내 나몰라라 했다.

고유가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이 난방유 특소세를 내리고 영세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게 고작이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휘발유와 경유는 쏙 빠졌다.

'팥소없는 찐빵'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정도 유가는 우리 국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에 기름값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명목상 소득이 늘긴 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어렵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집값 전셋값이 오르고 물가와 사교육비가 뛰었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감당하기도 힘겨워 하는 사람이 숱하다.

샐러리맨들은 자가용이 돈 먹는 하마가 됐다며 울상이다.

국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최근 실시된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대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조사에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10년 전 41%에서 28%로 급격히 감소했다.

자산이 늘었다는 응답은 15%에 그쳤고 줄었다는 비율이 36%에 달했다.

생활형편이 얼마나 나빠졌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기에 유가 부담까지 가세했으니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이 더욱 힘들어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데도 경제부총리란 분이 지금의 유가는 늘어난 소득으로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 휘발유 가격은 턱없이 높다.

국민소득까지 고려한다면 상대적 가격은 더욱 비싸다.

아무리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지만 왜 이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기름을 수입하기 힘든 처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정부의 속내는 뻔하다.

손쉽게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을 포기하기 싫다는 뜻이다.

유류세를 10% 인하할 경우 세수는 연간 1조9000억원 정도 줄어든다.

이 정도의 세금을 다른 명목으로 거둬들이기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정부는 과연 유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유류세를 인하할 수 없다는 이야기 외에는 솔직히 들은 바가 없다.

국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정부는 세수가 늘어 뒤에서 웃음을 짓는다면 그것만큼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일도 없다.

재정 상태 등을 고려해 대폭적 인하가 불가능하다면 소폭적 인하라도 실행하면서 국민들과 고통을 분담하려는 시늉이나마 하는 것이 정부의 올바른 모습이다.

더구나 지금 정부는 행복도시다 혁신도시다 해서 여론의 공감대도 얻지 못한 국토균형발전 정책 등에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그런 정부가 대부분 국민들이 원하는 1조9000억원 정도의 유류세 인하는 본 척도 않는다면 말이 되는가.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유류세를 내리는 것은 물론 낭비성 예산을 철저히 가려내 줄어든 세수만큼 예산을 삭감하고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야 한다.

국회가 과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