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4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 합의문을 도출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적잖이 '기싸움'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O…노 대통령은 3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의 오전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남측의 '개혁·개방'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자 "이렇게 하면 점심 먹고 짐 싸고 가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색한 것은 아니고 웃으면서 '농반 진반'으로 얘기했지만 김 위원장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전날 노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했을 때도 북측의 분위기는 싸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남 위원장이 역시 개혁·개방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교과서적으로 북측의 기존 입장을 50분씩이나 설명했고,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 대통령이 난감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도 이에 맞서 30분 동안 우회적으로,때로는 직설적으로 남측의 입장을 얘기하며 적극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입장이 처음에는 그만큼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분위기가 이처럼 좋지 않고 노 대통령이 걱정을 하자 참모진이 "(북한이) 원래 그렇다.

기선 제압용이니 개의치 마시라"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O…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문구는 북측이 제기한 안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우리 측은 이와 다른 문안을 준비했는데,노무현 대통령이 "북측 안이 좋다.

북측 것을 받아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와 관련,청와대 관계자는 "직접 관련 당사국이라고 할 때 우리가 빠진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는데다 대통령이 북측 안이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O…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관련,김 위원장이 "친척집에 갈 때도 정례적으로 가느냐"는 농담성 발언을 던지며 '수시로'라는 표현을 넣자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친척은 수시로 만나면 되는 것이다.

정례화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남북의 특수관계에서 정례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O… 대기업 대표들은 경협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방북 기간 내내 국내 언론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기자들과 접촉도 가능한 한 피하고,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원론적인 답변으로 비켜갔다.

한 대기업 회장은 방북단에 참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몸만 따라가는 거지"라고 말했고,또 다른 회장은 "분위기만 보는 것이다.

돈이 돼야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O…대기업 회장을 비롯한 특별수행원은 이번 회담 기간 중 수행원 없이 전 일정을 혼자 소화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접 가방을 들고 회의장이나 행사장으로 옮겨 다녀야 했고,북측 사정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일정을 직접 챙기느라 애를 먹었다.

O…북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선(動線)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한편 우리 기자단의 근접 취재를 철저히 차단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정해진 일정과 동선 외에는 평양시내의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 사실상 발이 묶였다.

O…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인터넷 등 기술적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평가,눈길을 끌었다.

평소 인터넷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의 회담 과정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업무 편의를 위해 인터넷 개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자 "나도 인터넷 전문가다.

공단 안에서만 통하면 되는데 북한의 다른 지역까지 연결돼서는 문제가 많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개성공단에 인터넷을) 못 열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