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부실수사가 또 도마에 올랐다.

'가짜 박사' 신정아씨에 이어 정 전 비서관의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염원섭 부산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증거불충분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기각에 따라 검찰에 구금돼 있던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오후 10시30분께 귀가했다.

그는 귀가하면서 "지금은 정신을 집중해 생각할 만한 상황이 아니며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돼 죄송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주어진 절차에 성실히 임하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신씨 영장기각과 마찬가지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기각 사유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염 부장판사는 "김상진(부산건설업자)이 정씨의 형 회사에 공사를 주게 했다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염 판사는 "정씨가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고,이 사건 관련자인 김씨와 정상곤(전 부산국세청장)이 이미 구속돼 단기간에 석방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아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피의자가 2006년 8월 김씨로부터 세무조사에 관한 청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형이 김씨의 사업을 수주받을 수 있도록 약속받았다고 하지만,피의자가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고 영장실질심사에서 반박자료를 제출하며 참고인에 대한 추가조사를 희망하고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해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원의 영장기각은 이미 검찰의 영장청구 단계부터 예견돼왔다.

정 전 비서관은 부산지검에 출두하면서 '영장실질심사에 앞서'라는 제목의 A4용지 8장 분량의 글을 통해 검찰이 돈을 줬다는 김상진씨 측의 진술만으로 무리하게 얽어매려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은 올해 2월21일 김상진씨가 운전기사를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아파트로 보내 1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장모에게 전달하고 장모와 아내가 서로 확인전화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본인들에 대한 조사는 전혀 진행하지 않은 채 단지 장모와 그 딸이 주고받은 일상적인 통화의 기록만으로 혐의를 묻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어 "검찰은 지난해 12월31일 오후 3시30분께 김씨가 직접 집에 찾아와 1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때는 지인들과 산행을 마치고 집에 와 처제와 동서,그 아이들까지 십수명이 같이 있어 번잡했던 때여서 돈을 받을 상황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또 "당시 김씨가 부산에 내려오면 한 번 만나자고 전화해와 굳이 만나려면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검찰은 수표 등 금융기록도 없이 그 통화기록만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법 위반에 대해서도 정 전 비서관은 "김씨가 12억6000만원 상당의 공사를 형이 경영하는 회사에 하도급해 주도록 부탁을 받았다고 했는데 검찰은 형을 불러 조사한 적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영장심사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며 영장이 발부될 것임을 확신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뇌물사건은 그 특성상 계좌 추적이 불가능하고 뇌물제공자 측의 진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큰 데다 정황증거나 간접증거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법원으로부터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정상곤 전 지방국세청장의 '1억원 용처'에 대한 수사도 당분간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됐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구속에 따른 심리적 압박으로 사용처에 대한 진술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영장기각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