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오토바이 타지만 … '마이카 시대' 머지 않아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의 이름을 따 호찌민시로 명칭이 바뀐 옛 사이공의 벤탄(Ben Than) 시장 앞 로터리.퇴근 시간 '호찌민 만세'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뒤로 하고 수백,수천대의 오토바이 물결이 정신없이 교차로로 진입한다.

사방에서 울리는 경적소리.무슨 일 때문에 저리도 바쁜지….길 위에서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엉켜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손으로 만든 각종 잡화와 의류,식품 등을 파는 시장 상인들은 영어,일본어,한국어를 섞어 쓰며 손님 끌기에 여념이 없다.

"매년 시장을 찾는 외국인이 두 배씩 늘어난다"고 말하는 상인의 표정에서 사회주의의 잔상(殘像)은 찾아볼 수 없다.

어디를 가도 역동적인 베트남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실용적 애국주의자였던 호찌민에게서다.

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실용적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다는 게 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세로부터 국민들과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인민들이 굶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가 평생 마음 속에 간직했던 정치 철학이라는 것.오늘의 베트남을 움직이는 동력도 호찌민이 씨를 뿌린 근면성,잘 살아야 한다는 열정,민족에 대한 자존심에서 찾을 수 있다.

1985년부터 추진된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도 따지고 보면 호 아저씨(Uncle Ho)의 작품이다.

1969년 사망 직전 그는 "세금을 줄이고 내 장례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지만,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작된 도이모이 정책은 1980년대 정치적 통합기와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쳐 이제 막 꽃을 피우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8%대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고,외국인 직접투자(FDI)도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26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되면서 베트남 경제는 한발짝 더 도약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에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베트남은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고위 공무원의 아들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정부 부처에 취직할 수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황 녹 카이씨(29)는 "민간에서 경험을 쌓은 후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SM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세우는 게 그의 꿈이다.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은 다 비슷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무역회사를 세워 이미 돈을 꽤 많이 번 친구도 제법 된다"며 "공무원을 하지 않아도 돈 벌 기회가 많이 생기니 지루한 공무원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젊은이들은 베트남의 가장 큰 저력이다.

30세 이하 젊은이들이 8500만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다.

부자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무장한 이 젊은이들이 베트남의 생산과 소비 주체라는 것은 이 나라에는 축복이다.

젊은이들의 학습 열기도 뜨겁다.

한국수출입은행 호찌민 지점에 다니는 윙 띠 풍완씨(28)는 유창한 영어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회사가 끝나면 영어,컴퓨터 등을 배우러 학원에 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졸 고급 인력들을 적게는 한 달에 200달러에서 많게는 500달러에 고용할 수 있다.

젓가락문화로 손재주가 뛰어난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100달러 이하에 고용이 가능하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이 동남아 휴대폰,가전시장 공략의 전진기지로 베트남을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월급이 적다고 베트남의 소비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10년 전 거리를 가득 메웠던 자전거를 지금은 오토바이가 대신하고 있지만 지금의 경제성장 속도라면 머지않아 자동차로 들어찰 것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하노이와 호찌민시 거리에서는 BMW,벤츠 같은 고급 승용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호찌민의 최고급 백화점 다이아몬드플라자의 이왕걸 사장은 "한국에 비해 가격이 결코 싸지 않지만 1년에 20∼30%씩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직원들의 회식 장소가 값싼 로컬 식당에서 호텔 뷔페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적은 월급에 비해 높은 소비 수준은 월급과 수입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투잡스(two jobs)'다.

토지 개발 보상비,패전 후 나라를 떠났던 월남인들의 해외 송금(올해 70억달러 예상) 등으로 시중의 유동성도 풍부하다.

지난 한 해 주가가 144%나 오르면서 '주식 부자'도 많이 생겨났다.

호찌민·하노이(베트남)=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