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줄리 로엠 전 월마트 부사장,해리 스톤사이퍼 전 보잉 최고경영자(CEO)의 공통점은?' 정답은 모두 '이메일로 스캔들이 들통나 낙마했다'는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도 이메일 한 방에 무너지는 시대다.

이메일의 파괴력은 국내와 국외,정치가와 사업가를 가리지 않는다.

이메일 스캔들의 가장 흔한 유형은 불륜.부적절한 상대와의 은밀한 속삭임이 덜컥 앞길을 가로막는 경우다.

월마트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줄리 로엠이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케이스.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상징으로 각광받던 그는 회사 측과 갈등을 빚다 작년 말 해고됐다.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회사는 로엠이 부하 직원에게 보낸 '핑크빛 이메일'을 공개했다.

"당신이 나에게 키스할 때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이메일의 노골적인 대목은 한동안 선정적인 매체의 단골 소재가 됐다.

스타우드호텔 CEO로 활약했던 스티븐 하이어도 한 통의 이메일로 허물어졌다.

여직원들에게 성적으로 추근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처음엔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미혼의 젊은 여직원에게 보낸 선정적인 이메일이 증거로 제시되자 꼬리를 내렸다.

스타우드호텔 이사회는 즉시 해고통지를 보냈다.

글로벌 석유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CEO였던 존 브라운은 동성애 상대를 잘못 골라 기업인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브라운과 4년간 동성애를 해온 제프 체발리어는 브라운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그동안의 교제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때 사용한 증거물 역시 이메일이었다.

해리 스톤사이퍼 전 보잉 CEO도 여성 임원과 주고받은 부적절한 내용의 이메일이 빌미가 돼 사임했다.

권력을 남용하는 장면이 포착된 이메일도 치명적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정치적 두뇌'로 불리던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은 부시 행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연방검사 9명을 무더기 해임한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처음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로브가 법무부 관리들에게 검사 해임에 관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고 결국 백악관을 떠나게 됐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내무장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블렁킷도 마찬가지.그는 헤어진 전 애인의 필리핀 유모가 영국 비자를 받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슬쩍 손을 썼다.

물론 비자는 단 며칠 만에 발급됐다.

냄새를 맡은 언론이 '비자 스캔들'이라며 성토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의회 진상조사위는 '특혜는 바라지 않지만 좀 빠르게'라는 문구가 적힌 블렁킷 장관의 이메일을 발견했다.

블렁킷의 정치 생명은 그걸로 끝.씨티그룹의 샌퍼드 웨일 전 CEO도 투자수익을 높이기 위해 AT&T의 투자등급을 재고해 달라는 이메일을 증권사 직원에게 보낸 사실이 드러나 불명예 퇴진했다.

몇 해 전에는 '한국에서 황제처럼 지내고 있다'며 고향 친구들에게 한국 금융회사의 접대 문화를 이메일로 상세히 보고(?)한 칼라일그룹의 한 펀드매니저가 사표를 내기도 했다.

'이메일 스캔들'의 역사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포함돼 있다.

미국 프로농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홍보 담당 매니저였던 에릭 고번은 친구들과 장난 섞인 이메일을 주고받는 게 낙이었다.

하루는 연미복 차림의 흑인들 사진에 '게토 프롬(Getto Prom·빈민가 무도회)'이라는 제목을 달고 키득거렸다.

실수는 바로 다음 순간.이메일 주소록에서 친구 이름 바로 아래 있던 '언론사 기자그룹'을 클릭한 줄도 모르고 전송 버튼을 눌러 버렸다.

스스로 무덤을 파도 제대로 판 것이다.

'좀스러운' 성격이 탄로나 곤경에 처한 경우도 있다.

베이커 앤드 매킨지 법률회사에 근무했던 리처드 필립스는 그의 비서가 자신의 바지에 케첩을 흘리자 4파운드의 세탁비를 내라는 이메일을 비서에게 보냈다.

발끈한 비서는 그 이메일을 동료들에게 보냈고,필립스는 곧 '케첩 바지'라는 제목으로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소개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이메일 때문에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검열에 걸릴 만한 직접적인 문구 대신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고 한밤중이나 새벽 등 의심을 살 만한 시간에는 이메일을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