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개 자동차 메이커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서 올 상반기에만 20개의 신차가 쏟아졌다.

49개 모델은 가격이 대폭 인하됐다.

불붙은 경쟁 속에서 지난해까지 4위를 지켰던 현대자동차의 판매 순위는 지난 6월 11위로 떨어졌다.

명품 브랜드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현대차의 상반기 판매량은 22만1463대로 전년 동기보다 8.3% 줄었다.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자 폭스바겐 시트로앵 등 중저가 메이커들은 할인 판매에 나섰고,벤츠 BMW 등 고급차 업체들은 중소형차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인도에서는 도요타 혼다 BMW 포드 르노닛산 등이 잇따라 공장 신·증설에 나서면서 현지 업계 2위인 현대차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현대차는 환율 급락의 직격탄을 맞아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는 물론 엔저(低)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차가 해외 주력 시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유례없는 격변기를 맞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무차별 할인 공세와 영역 파괴 싸움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극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업체들의 사활을 건 '자동차 세계대전' 속에 현대·기아차는 목표대로 2010년 '글로벌 톱5'에 드느냐,아니면 도태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저가 중소형차 시장에서는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나서 격차를 좁혀오고 있고,고급 대형차 시장에서는 일본 독일 업체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약해 고전하는 중이다.

이는 주력 시장에서 판매 정체 및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외에 중국 시장 판매량도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보다 7.2%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상반기 판매량(23만4857대)을 0.5% 늘리는 데 그쳐 연간 목표치(55만대) 달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판매 부진과 원가 상승으로 2003년 8%대에 달했던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올 1분기 4.4%까지 떨어졌고,기아차는 4분기째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영 체제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판매 부진 타개책을 찾는 한편 내년 제2공장 가동을 앞둔 인도는 정몽구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미국·유럽에서는 대대적인 브랜드 이미지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도요타에 버금가는 브랜드 파워를 기르고,원가를 혁신적으로 절감하지 못하면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대·기아차 노조는 회사 측이 애타게 요청하고 있는 '고통 분담을 통한 위기의식 공유'를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기아차는 적자 상태에서 임금을 올려 달라며 연일 파업 중이다.

세계적으로 초강성 노조로 꼽히는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노조가 살아남기 위해 감원 등 회사 측의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올리며 세계 자동차 업계 1위로 올라선 일본의 도요타 노조가 올해 기본급 1000엔(한화 7500원) 인상에 동의한 것은 현대·기아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을 진행 중인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환율보다 강성 노조가 더 무섭다"며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다.

사력을 다해 경쟁 업체들과 싸워도 모자라는 판에 노조에 발목이 잡혀 싸울 힘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자동차산업팀장은 "미국 자동차 노조는 회사가 어려워지자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하는 쪽으로 협상의 방향을 잡고 있고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 노조는 오래 전부터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용 절감에 동참하고 있다"며 "전 세계 경쟁 업체들이 모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만 해마다 파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호/유승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