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조약 모양새…국가.국기 등 상징조항 삭제

대통령.외무총책직 신설 등 핵심조항 존속

EU(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23일 새벽 브뤼셀에서 마라톤 협상 끝에 2년 전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EU 헌법을 새로운 조약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다.

새 조약은 2005년 부결된 헌법에서 문제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으로, 부결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국민투표를 피하기 위한 '미니조약'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EU 대통령직 등 법규와 제도 등의 혁신을 위한 핵심조항들은 그대로 담고 있어 창설 50년만에 정치통합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부결 헌법에서 빠진 조항들 = 한번 실패한 국민투표를 피하기 위해 헌법이란 명칭과 함께 EU에 초국가적 지위를 부여하는 국가와 국기, 공휴일 등 상징물에 관한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조항이 삭제된다고 푸른 색 바탕에 황금빛 별 12개가 새겨진 EU 기(旗)나 EU의 노래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며 종전처럼 사용될 전망이다.

EU 시민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본권리를 담고 있는 기본권 헌장은 그대로 존속된다.

하지만 영국의 요구조건에 따라 어떤 유럽 법원과 영국 법원도 이 헌장을 영국에 불리하게 적용해선 안된다는 내용이 부속문서로 수록되게 됐다.

영국은 기본권 헌장이 자국의 노동.사회법은 물론 조세제도 및 사회복지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기본권 헌장을 받아들일 경우 기업의 근로자 해고 권한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영국법과 EU 법규 사이 충돌로 유럽사법재판소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왔다.

◇부결 헌법에서 살아남은 핵심조항들 = 국제사회에서 EU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대통령과 외교총책직이 살아남았다.

EU 대통령직은 현재 27개 회원국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맡는 순회의장직을 2년6개월 임기의 상임의장직으로 바꾸자는 제안으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대통령직은 1회 연임이 허용된다.

임기 5년의 새 외교 총책 직도 신설하되 직명은 외무장관이 아닌 외교정책대표로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신설되는 외교정책대표직은 현재 위기관리를 맡고 있는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대표와 구호예산과 대외관계 직원을 통제하는 베니타 페레로-발트너 EU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의 직무를 통합하는 것이다.

새 외교총책은 또 현재 순회의장국 외무장관이 맡고 있는 EU 외무장관 회의도 주재한다.

또 EU의 행정부격인 집행위원회의 집행위원 수롤 현 27명에서 18명으로 축소하자는 조항도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끝까지 몽니를 부린 이중다수결제는 도입시기를 당초 2009년에서 2017년으로 미루는 선에서 타협됐다.

이 제도는 EU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역내 인구의 65%와 27개 회원국 중 15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요구로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경쟁이 이뤄지는 역내시장'이란 대목이 조약 본문에선 삭제됐으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의 요구로 부속문서에 같은 내용을 수록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sang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