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8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바꾸는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며 또다시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促求)하는 발언을 했다.

정부가 왜 자꾸만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를 간섭하고 나서는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자 시장을 무시하는 월권이 아닐 수 없다.

공정위원장이 문제삼는 것이 삼성의 계열사끼리 얽힌 순환출자이고,그가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배구조가 지주회사 체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이미 지난해에도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언급을 한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차 지적해왔듯,기업 지배구조는 본질적으로 그 기업 주주와 투자자에 맡겨져야 할 문제일 뿐 아니라 과연 어떤 지배구조가 최선인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지배구조가 어떻든 기업의 경영효율이 높아져 더 많은 수익을 내고,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면 그것이 좋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삼성처럼 글로벌화 돼있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놓고 국민경제적 효용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획일적인 잣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순환출자 구조도 과거 우리 기업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형성된 측면이 크고,당장 이를 해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칫 글로벌 기업의 근간(根幹)마저 흔들리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크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삼성은 국내 대표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외국인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런 현실은 도외시한 채 불필요한 경영권 방어비용 지출 등 엄청난 경영자원 낭비를 초래할 지배구조 개편에 집착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까닭을 정말 모르겠다.

겨우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 하는 마당에 지금은 지배구조 개선보다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투자가 절실한 때다. 정부가 기업투자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린다면서 지배구조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듭 말하지만 공정위는 지배구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본연의 경쟁촉진에만 주력할 일이다. 그것을 저해하는 불공정행위가 있다면 엄정하게 법을 적용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