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결혼(marriage in heaven)'으로 평가받던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이 9년 만에 '지상의 이혼'으로 전락한 원인은 뭘까.

블룸버그는 14일 영국 자동차 산업 컨설팅 회사인 AID의 피터 슈미트 전무의 말을 인용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실패는 출발부터 예고됐었다고 보도했다.

1998년 5월 두 회사가 합병을 발표할 당시 슈미트 전무는 '약점끼리의 합병' '분필과 치즈의 결합'(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른 제품의 결합)이라며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크라이슬러…파경으로 끝난 세기의 합병
◆벤츠 이미지 판매로 연결 못시켜


두 회사의 빅딜이 실패로 막을 내린 것은 고급 이미지의 메르세데스벤츠와 대중적인 크라이슬러의 결합이 갖는 시너지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벤츠의 제조 기술과 크라이슬러의 대량생산 능력 간 결합도 기대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벤츠에 대한 신뢰를 크라이슬러 구매로 연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병 발표 당시 양사는 부품과 기술을 교환하고 구매와 유통망 공동 이용을 통해 다음 해인 1999년 14억달러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병 절차가 완료된 1998년 11월 로버트 이튼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은 "향후 3년 안에 합병 회사가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현 최고경영자(CEO)인 디터 제체는 이런 판단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고급차와 대중차 시장은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졌음에도 시너지 효과를 과대평가했다"고 고백했다.

◆구조조정 없는 단순 합병

유럽과 미주대륙이라는 지리적 구분,대중적인 차와 고급차라는 시장 구분을 통해 양 브랜드를 단순히 발전시킨다는 '소박한 꿈'도 전략적 실패로 귀결됐다.

'대등한 합병(Merger of Equals)' 전략이 패착이었다.

존 맥더피 와튼스쿨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양사의 역량을 한데 묶으려 하지 않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병존 전략 때문에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병 직후 공장 폐쇄나 인력 감축을 진행하지 않아 격화되는 원가 절감 전쟁에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이런 전략은 또 양사의 기업 문화를 융화시키는 데 장애가 됐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글로벌 인사이트의 존 월코노윅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제휴 협력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의 기업 문화와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양사는 유럽과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 전통을 가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기업 문화 융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했다.

FT는 슈투트가르트 본사의 다임러 임직원들과 디트로이트의 크라이슬러 직원들이 다른 회사 사람들처럼 얘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자동차 왕국' 집착도 화근

크라이슬러…파경으로 끝난 세기의 합병
세계 자동차 업계에 합종연횡 바람이 거세게 불긴 했지만 '세계 자동차 주식회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화를 불렀다는 분석도 있다.

FT는 위르겐 슈렘프 전 다임러 CEO의 '에고(ego,자존심)'가 너무 컸다고 지적했다.

슈렘프 전 CEO는 유럽과 미국,아시아 자동차 회사들을 묶어 '세계 주식회사(Welt AG)'를 만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그런 과욕이 당시에도 재무 상태가 나쁘고 중후한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의 크라이슬러 인수에 열을 올리게 만들었다.

다임러는 그러나 2년 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 투자한 지분을 매각하고 이번에는 크라이슬러를 도려내며 슈렘프의 비전을 무너트렸다.

◆투자원금 80% 날려


다임러는 크라이슬러를 74억달러를 받고 서버러스에 팔기로 했다.

1998년 인수 금액인 360억달러의 5분의 1 가격이다.

단순 가격만으로 치면 투자 원금의 80%를 날린 셈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가총액도 3분의 2로 감소했다.

다행인 것은 크라이슬러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과 의료비 부담(약 190억달러 규모)을 크라이슬러를 운영할 신설 회사에 떠넘겼다는 점이다.

프랑크푸르트의 드레스드너은행 주식 투자전략가인 우베 트렉만은 "의료비와 연금 지급 의무가 크라이슬러에 남는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