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서 남동쪽으로 4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테푸키(Te Puke). 과수원과 목장이 넓게 펼쳐진 인구 7000명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그러나 이 마을엔 뉴질랜드 키위영농조합(제스프리 그룹)이 전 세계 키위 시장의 20%(작년 매출액 6천억원)를 차지할 수 있는 경쟁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12만평에 달하는 키위 연구농장이 비밀의 열쇠다.

농장 소유주는 뉴질랜드 국립원예연구소,일명 호트연구소(Hort Research)다.

호트연구소가 자랑하는 대박 상품은 골드키위. 1991년 이 연구소의 러셀 로 박사에 의해 개발됐다. 로 박사는 "유전자 변형이 아닌 접붙이기 방식으로 15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골드키위는 그린키위보다 당도가 높고 비타민E 등 영양분이 풍부해 뉴질랜드 원예 수출의 효자상품(총 원예 수출액의 11% 차지)으로 떠올랐다.

성공의 배경에는 치열한 연구개발(R&D) 경쟁이 있었다. 호트연구소는 일반 정부 조직과는 달리 기업식 구조를 갖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은 7명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이뤄진다. 부문별 연구비 역시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호트연구소 키위 품종 개량 부문의 총 책임자인 앨런 실 박사는 "매년 부문별로 연구비를 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면서 "이사회가 철저히 장래 수익성을 평가해 차별적으로 연구비를 배분한다"고 말했다.

민간기업과의 다양한 협력 시스템도 호트연구소의 성공요인이다. 현재 호트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21개 연구 프로그램들마다 라이선싱,조인트벤처,분사,협정 등 다양한 방식의 민간협력이 이뤄진다. 2004년 제스프리와 체결한 R&D 협정이 대표적 사례. 이 협정을 통해 제스프리는 호트연구소가 개발한 골드키위(프로젝트명 호트16A)의 독점판매권을 얻었고 호트연구소는 20억원가량의 로열티를 매년 지급받게 됐다.

캐롤 워드 제스프리 마케팅 담당자는 "제스프리의 연구개발은 전적으로 호트연구소에 위탁해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호트연구소가 민간을 통해 조달하는 연구비는 총 예산(420억원가량)의 50%를 넘는다.

이런 호트연구소의 성공은 국내 농업 R&D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인건비와 연구비 명목으로 쓰는 예산이 매년 5000억여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민간 조달 비율은 미미한 수준.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국내 농업이 영세해 R&D에 투자할 만한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문별 경쟁원리도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5년마다 프로젝트별 사업성을 분석해 인센티브를 지급하지만 그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R&D 분야에도 경쟁원리가 도입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의 R&D 시스템 하에서는 현장이 접목된 연구성과가 나오기 힘들다"면서 "프로젝트와 연구자별로 성과 인센티브를 늘리는 등 경쟁원리가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푸키(뉴질랜드)=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